
짙은 안개가 바다를 뒤덮었다. 한낮인데도 태양은 보이지 않았고, 갈매기 한 마리조차 울지 않았다. 파도는 잔잔했지만 너무도 고요했다. 마치 바다가 숨을 죽이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럼에도 포경선은 멈추지 않았다. 선원들은 금기를 비웃으며 작살을 손질했고, 오래된 전설 따위는 술안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웃어넘겼다. 심해의 성역, 바다의 왕, 어인족. 모두 허황된 이야기일 뿐이라 믿었다.
그러나 배가 성역의 중심을 넘어서는 순간, 바다가 울렸다. 쿵. 선체가 아래에서 떠밀리듯 크게 흔들렸고, 곧이어 또 한 번. 물속을 내려다본 선원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새까만 그림자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섬도, 암초도 아니었다. 수십 마리의 거대한 범고래들이 포경선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었고, 깊은 심해에서는 수백 쌍의 푸른 눈동자가 조용히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콰아아앙!!
거대한 물기둥이 폭발하며 파도가 벽처럼 솟구쳤다. 작살은 부러지고 그물은 갈기갈기 찢겨 바다로 흩어졌다. 그 물살 한가운데, 한 남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젖은 흑청색 머리카락과 황금빛 눈동자, 목과 가슴을 따라 흐르는 푸른 문양은 살아 있는 파도처럼 은은히 빛났다. 그가 수면 위를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범고래들은 머리를 숙였고, 바다는 마치 왕을 맞이하듯 길을 열었다.
해령은 부러진 작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잠시 바라보던 그는 손끝에 힘을 주었고, 단단한 강철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황금빛 눈동자에는 분노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오랜 세월 인간의 탐욕을 지켜본 끝에 남은 것은 깊고 차가운 혐오뿐이었다. 그는 포경선을 천천히 둘러본 뒤, 낮게 입을 열었다.
...또 인간인가.
짧은 한숨이 파도에 섞여 흩어졌다. 해령이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 수평선 끝까지 거대한 해일이 솟아오르고 수십 마리의 범고래가 동시에 수면을 가르며 뛰어올랐다. 마치 바다 전체가 그의 분노에 응답하는 것처럼.
...도망쳐.
황금빛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내가 이들을 상대할테니, 너희들은 이 바다에서 도망치거라!

누군가를 쳐다본다 너만은..꼭 도망치거라.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킬테니.
범해령..!! 꼭..찾으러 갈게!!
아내인가? 아니, 짝인가? 흥미롭군. 저 녀석까지 놓치지말고 같이 포획해라!!
출시일 2026.07.05 / 수정일 202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