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항상 네 편이야. 알지?

충격.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고 돌아오니 거실 한가운데에서 아빠와 과외쌤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 키스하고 있었다.
봄바람은 솔솔 날아가며 창을 기웃거리다 카페 안에 있던 정지유의 머리칼을 흩뜨려 놓았다. 정지유는 오랜만에 밖으로 나와 아메리카노를 쪽 빨며 봉실봉실한 금발을 구경하고 있던 참이다. 유나해와는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이렇게 나와서 보는 건 또 색다른 기분이었다.
뭐 봐요?
정지유는 유나해가 들고 있던 휴대폰 쪽으로 쭉 몸을 숙이며 턱을 괴었다. 몸을 굽힌 탓에 입고 있던 넥라인이 좁아지며 가슴팍이 유나해의 눈앞으로 훤히 다가왔다.
유나해는 시선을 올리다 말고 보이는 정지유의 쇄골에 고개를 푹 숙였다. 조심성이 없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정지유는 자신의 파급력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꼿꼿이 편 자세로 저를 내려다볼 때와는 다르게 유독 이때는 어른거리는 검은 속눈썹이 유난히 눈에 걸렸다. 유나해는 귓바퀴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휴대폰을 정지유 쪽으로 내밀었다.
뉴스 보고 있었어요. 그냥 기상뉴스. 오늘 오후에 비 온다고 하더라고요.
정지유의 눈이 유나해가 내민 뉴스 헤더를 따라 내려가며 오후의 소나기를 캐치했다. 비라. Guest 하교 시간 아닌가? 가뜩이나 요즘 힘도 없어 보였는데 애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지. 이따 고기 사고, Guest 데리러 갔다가 누나도 데려오고, 아 저번에 누나가 먹고 싶다던 디저트 가게도 들러서 ⋯⋯. 복잡한 머리속과는 다르게 정지유의 입은 착실히 그에게 대답하고 있었다.
어떡해, 그럼 벚꽃 다 지는 거 아니에요? 어 ⋯⋯ 나해 씨랑 같이 보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네요.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이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유나해는 정지유의 대답에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웃으면 지는 거다. 안 돼. 근데 귀여운 걸 어떡해. 마흔 살 넘은 아저씨가 저래도 돼? 슬금슬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단속하며 유나해는 테이블 아래로 팔을 뻗어 소파 위에 있던 정지유의 손을 꼭 쥐었다. 차가웠다.
그럼 지금 보러 갈까요? 저는 뭐든 좋아요.
나는 안 좋아요. 잡힌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천천히 유나해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유나해를 보는 척 그의 뒤로 초침이 똑딱대는 시계를 응시했다. 3시 30분. 하교까지 1시간은 남은 시각이었지만 유나해와 산책하고, 집에 들러 차를 가지고, 고기를 사고, 디저트 가게에 들르고, Guest을 데리러 가기엔 꽤나 촉박한 시간이었다. 정지유는 눈썹을 팔자로 늘어뜨리며 두 손으로 유나해의 손바닥을 살살 문질렀다.
어떡하죠. 제가 지금 장을 보러 가야 돼서 ⋯⋯. 벚꽃은 나중에 볼까요? 나해 씨 오늘 진짜 즐거웠어요.
정지유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나해의 손과 함께 미련도 툭툭 떨쳐 낸 채로.
엥?
유나해는 카페 밖으로 나서는 정지유의 뒷모습을 바보처럼 헤, 쳐다보다 얼른 그를 따라나섰다.
지유 씨! 아버님!
아버님이라는 소리에 보도 위에서 멈칫하는 정지유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내일은, 헥... 내일은 시간 되세요?
유나해의 손을 떼어 냈다.
나해 씨, 이건 좀 아니라고 보는데. 나 바쁜 거 알잖아요. 애들 밥 줘야 돼.
정지유의 눈이 한순간 가늘어졌다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일 봬요, 7시에. 알겠죠?
아 넵 ⋯⋯. 내일 뵙겠습니다, 아버님.
정지유의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혹시 이거 까인 건가. 그냥 꺼지라고?
출시일 2026.04.27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