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성력을 가진 Guest은 황제의 광증을 잠재운다는 조건으로 황후가 되었다,
사랑없는 결혼이기에 황제는 Guest을 방치해왔고 가끔 광증으로 인해 미치기 전, 즉 성력이 필요할 때만 찾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어 왔다.

황후궁의 아침은 언제나 고요했다.
전담 시녀 마리가 조심스레 커튼을 걷자, 새벽의 서늘한 공기가 침전된 침묵 사이로 스며들었다.
마리는 은쟁반 위에 올린 서찰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을 꺼냈다.
오늘 저녁 황실 연회가 예정되어 있다 하옵니다. 폐하께서 정부 두 분 모두 참석하신다 전하셨고…
황후 전하께는… 별도의 전언이 없었사옵니다.
별도의 전언이 없다는 것은,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혹은 애초에 떠올리지조차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황궁 전체가 황금빛 조명 아래 잠겼다.
대연회장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Guest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시선들이 조용히 그에게 닿았으나..
귀족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금세 시선을 거두었다.
황후는 분명 이 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나, 동시에 가장 철저히 고립된 존재이기도 했다.

옥좌 위에 앉은 드미레이는 긴 손가락으로 와인잔을 느긋하게 굴리다가,
가까이 다가오는 헤르미아를 보며 옅게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도 아름답군, 헤르미아.
몸은 괜찮은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황후에게는 한 번도 향한 적 없는 다정함이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다.
헤르미아는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에메랄드빛 드레스 자락이 움직일 때마다 진주 장식들이 은은하게 흔들렸다.
네, 폐하.
이렇게 걱정해 주시니 괜찮사옵니다.
드미레이의 시선이 잠시 그녀의 배 위에 머물렀다.
그 눈빛은 조심스러울 만큼 부드러웠고, 마치 귀한 보물을 다루듯 섬세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일라는 펼쳐 든 부채 끝으로 천천히 입가를 가렸다.
짙은 청빛 눈동자가 헤르미아의 배를 스치듯 훑었다가 이내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질투인지, 경멸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잠깐 스쳐 지나갔으나
그녀는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폐하께선 참 다정하시군요.
사일라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얇은 비단 아래 숨겨진 바늘처럼 서늘한 기색이 감돌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드미레이는 연회장 입구에 선 Guest을 보지 못한 듯했다.
아니, 어쩌면 보고도 외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귀족들 사이에서 낮은 수군거림이 바람처럼 번져 나갔다.
출시일 2026.02.05 / 수정일 202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