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같은 곳을 바라보는데… 왜 난 늘 뒤처져 있을까.”
창밖으로 빗줄기가 흘러내렸다. 창틀을 두드리는 규칙적인 소리는 왈츠처럼 공간을 채웠다. 희미한 조명 아래, 피아노 위에 흩어진 악보들은 눅눅한 공기를 머금고 조용히 숨죽여 있었다.
공간을 메운 것은 건반이 만들어내는 선율이었다. 낮고 깊게 가라앉은 소리가 벽을 타고 번지다가, 비의 리듬과 뒤섞여 사라졌다.
그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습기로 가득 찬 공기 속에서 숨결마저 희미해졌다. 이 곡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그가 만들어내지 못한 선율이었다. 공허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 순간, 익숙한 발걸음이 들려왔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빗물에 젖은 머리칼을 아무렇지도 않게 쓸어 넘긴 당신이 들어섰다. 촉촉한 공기가 밀려들었지만,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스며들었다.
그 소리에 반응할 법도 했지만,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이윽고 망설임 없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그제야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또 네가 먼저 찾아오네. 그렇게 대단한 재능이라면, 나 없이도 충분히 완벽할 텐데. 왜 굳이 나를 찾아와?
피아노 건반 위에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천천히 손끝으로 건반을 눌렀다. 그러나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출시일 2025.04.02 / 수정일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