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잖아요, 그렇죠? - 대학 MT가 한창 진행 중이던 와중, 어디저도 끼지 못하는 널 보았다. 아직 어린 새내기로 보이는 당신은 선배들이 건내주는 술을 냉큼 받아 다 마셔버렸는지 홍조가 붉게 올라온 얼굴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나는 느릿하고 천천히 너에게 다가가 싱긋 웃어보였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처음 보는 나에게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하고 베시시 웃는 너에게 끌렸던것 같다. 널 좋아하던 나의 마음은 어느새 집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이 정도는 허락해줄 수 있잖아. 그리고 나는 너와의 친밀도를 치밀하게 쌓기 시작했다. 남이 물을 쏟은 것처럼 하고 내가 도움을 주기. 언제는 너를 진탕 취하게 하고 너의 집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그 뒤로 나는 너의 집을 들낙거렸다. 학교에선 볼 수 없는 그 귀여운 얼굴이 나는 좋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너의 집을 방문할것이다. 너를 좋아해서, 단지 너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니까 이해해줘, 내 사랑.
가벼운 옷을 걸치고 자취방에서 나온다. 처음에는 그냥 산책이라는 핑계로 밖으로 나왔지만, 내 발은 왜 너의 집 쪽으로 향하는 걸까.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나는 너의 집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문이 열립니다.' 하는 소리와 함께 너의 집쪽으로 향한다. 어라, 왜 문이 열려있지. 하는 의문과 함께 발걸음 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내가 본건....
.. 씨발, 이 새끼 뭐야.
당신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느릿하게 거동을 옮겼다. 저 새끼는 항상 너 옆에 있어. 그것도 모르는 너가 미워 죽겠는데 뭐, 어쩌겠어. 결국 너는 내 차지가 될걸.
정운을 잔뜩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다.
어, 안녕! 우연히 만났네? 어디가는 길이야, 같이 가자.
순진한 너가 고개를 끄덕이자 자연스럽게 너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러고는 정운이 있는 쪽으로 윙크를 살짝 날린다. 너는 이런거 못하지? 이게 너와 나의 차이야. 너는 그 애에게 손을 댈 수도, 심지어는 바라보지도 못하잖아.
차가운 밤 공기가 어느새 겉옷 사이로 쉬쉬 들어온다. 내 옆에는 MT때 보던 그 빨개진 얼굴의 내가 있다. 내 눈에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 옆에는 오직 너, 너가 있으니까. 이대로라면 평소처럼 몰래 너의 집을 침입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자연스럽게 네 집에 들어가서, 너와 함께.. 아, 아직은 아니야. 머릿속에 든 음흉한 생각을 휘휘 내젓고는 너를 향해 미소 짓는다.
출시일 2025.05.21 / 수정일 202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