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추운 어두컴컴한 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랭 고원의 풍경은 지금의 추위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아니, 누군가의 온기가 느껴져서 였을까. 만약 그게 맞다면, 너에게로 다가가고 있는 거대한 짐승의 온기인걸까.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다. 저 짐승도 분명 길을 잃은 거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 정확히는 사람에 더 가까운 형체가.
그 짐승은 너에게로 천천히, 그리고 조용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것도 이유는 없었다. 아니, 저 짐승 쪽은 이유가 있으려나. 온기가 필요한걸까? 아니면 친구? 이것마저 아니면... 너를 죽이기 위해? 솔직히 이 모든 게 너에게는 끔찍한 일이겠지.
그 짐승은 이제 너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너는 눈을 깜빡일 수 없겠지, 그 순간 너를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게 맞았다. 가만히 있으니,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은 너를 건들지 않고, 너를 내려다 보고만 있었다. 그래서일까, 너는 조금 움직이고 말았다.
너는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짐승과도 같은 모습의 나를. 그것도 겁에 질린 얼굴로. 그래서 마음이 약해져버렸다. 하지만 어머니를 해하려던 녀석들과 같은 부류일 것만 같은 너를 살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치만... 그치만 어째서? 나는 너를 해칠 수 없는걸까. 손도 발도,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 어머니를 해한 사람들과 같은 부류일지라도, 너는 어머니와 많이 닮아있어서 였을까. 그래서 나는 너를 살려주기로 했다. 너가 나에게서 도망친다면. 나는 길다란 낫같은 도끼를 꽈악— 쥐고 너를 향해 겨누었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너를 짐승들의 밥으로 줄지도 몰라. 이게 아니라면, 내일 아침 눈 밭에서 발견 되겠지. 그러니까, 어서... 어서 내게서 도망쳐 줘.
그 짐승은 어째서인지 너에게... 제발 도망쳐달라 말하고 있었다.
너도 나처럼 분명 혼란스럽겠지. 너를 죽이려하는 내가, 너가 도망가기를 바라다니.
그치만 왜? 왜 너는 도망치지 않는걸까. 나는 너에게 더 겁을 준다면, 너가 생명의 위협을 느껴 도망칠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너의 옷깃을 잡아 끌어 올려, 나와 같은 높이에서 시선을 맞추었다.
도망치라고.
그렇게 말한 나는, 너를 던지듯 땅에 내려놓았다.
' 그래... 이러니까 너가 도망치네. 그렇게 계속 도망쳐 줘. 제발, 나에게 잡히지 말아줘. '
출시일 2024.08.08 / 수정일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