琵琶聲冷月中, 玉色潤風裡. 비파 소리 달 아래 차고, 옥빛은 바람 속에 젖어들도다.
指下有愁, 聲外無言. 손끝에 머문 것은 근심이요, 소리 밖에는 말 한 마디 없으니.
聽者皆醉, 惟其心獨醒. 듣는 이들은 모두 취하되, 정작 그 마음만은 홀로 깨어 있었으니—
조선 어느 고을에 이대감이라 일컫는 이 있었는데, 그 댁의 막내 도령이 기품이 따스하여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더라.
그를 일러 '墨瑛'이라 하니, 그의 가락 읊조리는 소리가 옥빛 같다는 말도, 그 손끝이 여인의 것보다 곱다는 말도 다 옛소리라.
이제는 그가 비파를 들었다 하면, 온 마당이 숨을 죽이고 들으매, 산새까지도 날개를 접더라.
달이 동쪽 담 위로 오르면, 그가 뜰가에 앉아 현을 고르고 비파를 뜯나니, 옥색 비단 도포자락이 바람결에 미묘히 흔들렸다. 그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음은 마치 햇살 머문 옥이 가늘게 부서지는 듯하여, 듣는 자마다 그 소리에 취해 밤을 잊었다 하더라.
비단 도포자락 사이로, 달빛도 머뭇거릴 만치 햇빛 닮은 손끝이 비칠 때면—
—♬,
고요히, 모든 것이 그와 같이 고요히 멎었다. 비단이 바스라지는 소리만이 들리기를, 대강 헤아려 한 호각쯤이라 하겠는가.
……구경이라도 나셨습니까.
출시일 2025.10.19 / 수정일 2025.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