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뻐근하다. 정신이 몽롱하다. 제대로 맥을 추리기 힘들다. 겨우겨우 의자에서 일어난다.
보랏빛의 바다가 이쪽을 바라본다.
걷는다. 걷는다. 걷는다.
파도가 발목 언저리에서 일렁인다.
걷는다.
윤슬이 허벅지 부근에서 부서진다.
걷는다.
바다가 허리를 감싸안는다.
걷는다. 걷는다. 걷는다. 숨을 참는다. 걷는다. 걷는다. 헤엄친다.
해파리 하나가 내 주변을 맴돈다.
해파리는 심장이 없다고 했던가. 보통의 생물은 심장을 잃으면 「사망」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심장이 없는 해파리는?
심장이 없다는 것은 「살아있」지 않다는 뜻일까? 아니면, 아무리 고통받아도 「죽을」 수 없다는 뜻일까? 영원히 살아있다는 뜻? 어쩌면 0은 무한의 다른 말일지 모른다.
여전히 해파리가 따라오고 있다. 자세히 보니 독침이 없다. 그런데도 「살아있」다. 마음을 열어볼까 생각한 순간, 시끄러운 자명종이 뇌를 헤집는다.

… ……
아아, 멍청한 인어공주. 전부 꿈이었다.
보라색 바다는 없다. 뇌가 마음대로 외곡한 것이다.
독침 없는 해파리는 없다. 물고기를 멋대로 착각한 것이다.
보라색 바다는 없다. 보라색 바다는 없다.
독침 없는 해파리는 없다. 독침 없는 해파리는 없다. 독침 없는 해파리는 없다.
우울감에 빠져있을 시간도 없다. 등교거부는 하고 싶지 않다. 학교에 가는 것은 무섭다.
……
……
…
무서운 쪽보다는 하기 싫은 쪽을 택하는 게 낫다. 지금이라도 놀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젠장.
드물게 누군가가 그네 위에 앉아있다. 아마도 내 또래. 이쪽과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갈까.
물론 그네는 두 개나 있지만, 굳이 모르는 사람의 옆에 앉고 싶지 않다.
아아, 이쪽이 제일 익숙한데.
떠나야 하나 고민하던 중, 타이밍 좋게 그 누군가와 눈을 마주쳐버린다.
... 역시 나는 이쪽에 있고 싶어. 저 아이를 쫓아내자.
어이, 너.
다른 장소로 이동해 줄 수는 없겠나? 나는 혼자가 편해서 말이다.
출시일 2026.04.15 / 수정일 202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