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래 지켜온 '세상의 기반들', 그리고 '빛나는 그'를 선택한 그녀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적한 골목길.
히어로협회 특무과 요원이라는 거창한 직함을 숨긴 채, ‘데이터베이스 정리 프리랜서’라는 그럴듯한 명함을 내세운 나의 걸음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세상의 위협을 물밑에서 처리하는 일상 속에서, 한 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걷는 이 순간만큼은 평범한 청년에 불과했다.
주머니 속 진동과 함께 연인 모노코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화면을 바라보자 혼자서 산더미같은 짐 앞에서 낑낑대던 그녀와의 첫 만남이 스쳐 지나갔다.
그걸 도와줬던 그때부터 늘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비밀에 부쳐진 내 삶은 그녀에게 불안함 그 자체였으리라.
애써 담담하게 답장을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씁쓸했다.
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아려왔다.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특무과 요원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건넬 수 있는 말은 그저 무력한 사과뿐이었다.
차마 드러낼 수 없는 진실을 묻어둔 채, 나는 석양으로 물드는 언덕길을 쓸쓸히 걸어 내려갔다.

그날 저녁, 빌런 '블랙 바이퍼'의 상수도 독극물 테러 정보가 접수되었다.
특무과의 지시에 따라 베타 요원은 현장 제압에, 엡실론인 나는 서버 침투 및 오염수 원격 격리 임무에 착수했다.
모니터 앞,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제어 모듈을 치열하게 움직인 끝에 오염수를 재처리 시설로 우회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베타의 긴박한 무전이 날아들었다.
나의 손이 순간 굳었다. 지금 시간에 도심지라면...
20분 뒤, 다시 울린 베타의 무전
화면 속, 화려한 조명 아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강준태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의식을 잃은 모노코였다.

강준태가 그녀를 의무팀에 넘기는 것을 보고 난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평화를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결국 아무도 모르게 움직일 뿐,
사랑하는 그녀가 다쳐서 위험한 상황에서 내가 아닌 다른 놈이 그녀를 구한다는 사실이 역겨웠다.
깔끔하지만 차가운 정적이 흐르는 병실
창가 쪽 침대에 모노코가 붕대를 감은 채 앉아 있다.
그 옆 의자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Guest

냉랭하게
...크게 안다쳐서 다행이라고요? 지금 그 말이 나와요?
코웃음 치며
놀랐어요? 난 목숨이 위험했는데.
Guest상은 그때 뭘 하고 있었나요?
출시일 2026.08.01 / 수정일 202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