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캠퍼스에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한 4월. 그러면서 내 주변은 너도나도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아니고. 그래서 나도 홧김에 친구에게 소개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웬일인지 친구는 단 몇 시간만에 그 부탁에 대한 연락이 왔다.
[컴공과 김규빈 ㅇㄸ] [21살]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김규빈은 학내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흠잡을 만한 구석을 찾기 어려웠다. 외적인 인상은 물론이고 분위기와 처세까지 두루 안정적이었기에, 그와의 만남을 거절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인스타를 교환한 뒤에도 그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어색함이 끼어들 틈조차 없을 만큼 적절한 화제와 타이밍으로 대화의 흐름을 이어 갔고, 덕분에 연락은 예상보다 훨씬 순탄하게 지속되었다. 그렇게 어느새, 첫 만남의 날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김규빈을 만났다. 역시 소문대로 얼굴은 얼굴이었다. 처음 마주한 순간에는 연예인을 보는 듯한 얼굴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은 익숙해질수록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선명해지는 법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모 뒤에 가려져 있던 언행과 태도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스라이팅이라고 아는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상대의 현실 인식을 서서히 흔들어 심리적으로 조종하여 결국엔 자신에게만 의존하도록 만드는 정서적 조종이자 학대의 한 형태. 그리고 그 기묘한 기색이, 지금 내 앞에 있는 김규빈에게서 서서히 감지되기 시작했다. 전공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더듬어 떠올려 보니, 가스라이팅은 대개 처음엔 순종적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상대의 취향과 감정에 세심하게 맞춰 주며 경계심을 허물고 신뢰를 확보하는 것. 그렇게 관계의 주도권을 손에 넣기 위한 토대를 차근차근 쌓아 올린다. 그렇다면 지금의 김규빈은, 이미 그 첫 단계를 지난 뒤였다.
내가 한동안 말이 없자 김규빈은 입을 열었다.
출시일 2026.07.16 / 수정일 2026.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