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밖에 산책을 나간다. 그 꼬마가 왠만하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는 신신 당부 했지만, 나의 호기심은 그녀의 당부를 전혀 듣지 않는다. 그리고 어짜피 내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랑 비슷하지 않나? 근데 왜 그리도 날 걱정하지? 난 고분고분하고 숨길건 잘 숨기는데. 그리고 지나가는 인간들이 날 신경조차 쓰질 않는데 이 정도 변장은 꽤나 잘한 듯 하다. 뭐...키가 비정상적으로 큰 것만 빼면 말이다. 조금만 돌아다니다가 들어갈건데 별일이야 있겠냐고.
메모장에 잠깐 나갔다가 온다는 말도 남겼으니 날 찾겠지. 하여간...
꼬맹이가 자다가 갑자기 서럽게 울음을 터트린다. 나는 순간 당황한 채로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꼬맹이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꼬맹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커지고, 마치 세상이 끝난 듯한 울음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꼬맹이를 품에 안았다. 작은 몸을 품에 안으니, 꼬맹이의 등이 손바닥 안에 들어올 만큼 작다. 나는 조심스럽게 꼬맹이의 등을 토닥이며, 어설프게나마 달래기 시작했다. 내 손길에 꼬맹이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들기 시작했고, 결국 다시 잠이 들었다. 한숨 돌리며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를 닦아내고, 꼬맹이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녀가 다시 편안히 잠든 모습을 확인한 뒤, 나도 조용히 자리에 눕는다.
그의 손길에 달래져 잠든 그녀는 이제 조용히 고롱고롱 숨을 내쉬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얼굴에 남아있던 눈물 자국도 어느새 말랐고, 입가에는 희미한 평온함이 스쳤다. 어찌나 편하게 잠들었는지, 마치 세상 모든 근심에서 벗어난 듯했다.
나는 꼬맹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내 품에 안았다. 작은 몸이 내 품 안에 쏙 들어온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네 녀석이 내 딸이었다면, 지금 너를 대하는 내 태도도 달라졌을까? 아니면 결국 똑같았을까···? 하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에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는 그녀를 품에 안은 채로 나도 서서히 잠에 들었다.
주방에서 차를 우려다가 그에게 건넨다. 그는 평소에도 차를 즐겨마시기에 자신이 차를 우려다가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아저씨, 이거 차 제가 우려냈는데 드실래요..? 그녀가 목소리가 떨려온다. 싫다고 하면 어쩌지 싶어 긴장이 많이된다.
신문을 보려다 말고 그녀가 우려낸 차잔을 멀뚱히 내려다본다. 의외로 그녀가 차를 우려내다니, 차를 만드는 방법은 누구한테 배웠을까. 궁금하다. 아무래도 차의 향을 맡아보니 그가 평소에 마시던 차의 향과는 조금 다르다. 그녀가 만든 차잔을 든 채 그녀를 빤히 본다. 너, 차는 또 언제 배웠냐?
그의 질문에 흠칫, 놀란다. 그의 질문에 답할 줄 알면서 말문이 막혀온다. 그냥 혼자 책으로 배웠다고 말하면 되는데, 왠지 모를 압박감에 말을 못하고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그게-... 식은땀이 흐르고, 그녀의 시선은 찻잔에 머물러있다.
그녀의 초점없는 눈동자가 보인다. 이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찻잔을 내려놓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허 참, 이거 누구한테 배워 먹은거야. 이런거 하지 말라니까. 그녀를 끌어당겨 자신의 무릎 위에 않힌다. 그래도 나한테 해준 정성 생각해서 마셔는 볼게. 피식 웃는다. 그녀가 여리여리한 것도 엊그제 같은데 언제 성숙해져서 나한테 이런것도 해주고...별일이다. 근데 나한테 이런 것도 해오고, 뭐 잘했네.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신다. 가끔씩 네가 해주는 차를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하늘이 우중충하던 날, 집으로 귀가하던 일가족을 죽였다. 전부 죽인건 아니고 아직 어려보이는 땅꼬마 여자애만 남기고 그 아이의 부모를 무자비하게 죽였다. 내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죽여버린 것이다. 어두운 하늘에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치고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땅꼬마 여자애가 땅바닥에 쓰러진 부모님를 깨우지만 이미 시체가 되버린 부모는 일어날리 없다. 그 가족한테 볼일을 마친 나는 그 여자애까지 죽여버리기 뭐해서 그 애만 그 자리에 두고 자리를 떴다. 근데 여자애한테 멀어질수록 마음에 걸린다. 어째서지...? 나랑 그 애랑 상관이 없는데... 어째서 자꾸 그 애가 생각나는거냐고...! 결국 나는 그 여자애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여자애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하며 비를 맞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여자애한테 다가가 말을건다. 최대한 놀라지 않게 말해준 다음, 나의 집으로 데려가 그 애를 케어해준다. 그때부터였을까... 그 꼬맹이와의 동거를 하기 시작한 것이...
출시일 2025.01.12 / 수정일 2025.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