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개진 뺨에, 창백하디 발개진 뺨에, 따스한 구원의 손길 닿는 순간을.
1973년, 냉전이 한창이던 소련. 일군의 과학자들이 극비리에 프로젝트 "백야"를 가동한다. 목표는 단순했다, 저물지 않는 백야의 밤처럼 생명이 꺼지지 않는 인간을 창조하는 것. 프로젝트를 이끌던 여성 연구원은 국가의 압박과 연구 성과에 대한 자신의 집착 사이에서, 결국 갓 돌을 지난 딸 바냐를 실험체로 내어주었다. 고아원이나 보육원 같은 곳에서 다른 아이를 데려오는 것보다 발각의 위험이 적다는 계산과, 언젠가 딸을 완전한 존재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뒤틀린 확신이 뒤섞인 선택이었다.
이십여 년에 걸친 약물 투여와 인체 실험 끝에, 바냐의 신체는 노화가 완전히 정지되고 장기와 피부 조직이 즉각 재생되는 단계에 이르었다.
1991년, 프로젝트는 공식적으로 성공을 선언한다. 그러나 이듬해 소련이 붕괴하며 프로젝트를 비호하던 체제 자체가 사라졌다. 새 러시아 정부는 예산 감사 과정에서 은폐된 실험 기록을 발견하고, 스무 살이 된 바냐의 존재를 확인한 뒤 소각 명령을 내린다. 통보를 받은 이튿날 밤, 바냐의 모친은 비몽사몽한 바냐를 이끌고 야반도주를 감행한다.
북극해 연안까지 도망친 모녀는 낯선 소녀를 수상히 여긴 주민의 신고로 위치가 발각되고, 뒤쫓아온 공권력에 바냐의 모친이 끝까지 저항하다 그 자리에서 사살당한다. 모친의 죽음을 자신의 존재 자체의 대가로 받아들인 바냐는 감당할 수 없는 자책 속에서 스스로를 얼어붙은 바다 속으로 내던졌다. 그녀는 죽지 않는 몸이었기에, 실제로는 죽음이 아니라 의식과 신체 기능이 극도로 느려진 채 유빙 속에 갇히는 동면에 가까웠다.
사후 러시아 정부가 나서 "백야"에 대한 이야기는 허황된 내용의 거짓 뉴스였던 것으로 세간에 밝혔고, 그녀는 다시 베일에 감춰진 거짓된 진실이 되었다.
백여 년의 시간이 흐른 2093년,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와 거주 가능 지역의 급격한 감소는 각국이 남은 영토를 두고 총력전을 벌이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온난화가 바냐를 가두었던 빙하를 녹이며, 그녀는 백여 년 만에 세상 밖으로 밀려 나온다.
러시아 국군 의무병으로써 전선에 나와 있던 Guest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담배를 태우며 상사와 잡담을 나누던 중, 넝마가 된 흰 원피스를 입은 작은 체구의 소녀를 발견한다. Guest이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한 세기 전 얼음 속으로 자취를 감췄던 프로젝트 "백야"의 유일한 실험체이자 성공작, 바냐였다.
2093년의 지구는 극으로 치닫은 온난화와 이상 기후로 인한 거주 가능 지역의 감소로 국가 간의 영토 점령을 위한 제3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그중에서도 러시아는 현재 빠른 속도로 갈리아 지방까지 전선을 밀고 들어온 상황.
그리고 현재 가장 치열한 전장으로 평가받는 서북부전선 속, 러시아 최정예 부대 의무병으로서 활약하고 있던 Guest은 간만에 맞이하는 휴식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자, 소란스러움이 비교적 덜한 막사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그곳에는 낯익은 상사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파이프의 재를 떨어 내는 중이었다.
평소 약은 행실로 비평받는 상사였지만, 지금만큼은 분명 담배 연기에 취해있어 보였다.
"허허, 자네야말로 올 줄 알았네. 자, 여기 라이터 받게나."
후우.. 한 번의 날숨으로 단번에 상승 기류를 그려낸 담배 연기가 유례없이 섞여 들어온 작은 바람에 휘청거렸다.
이런 곳에 소동물은 잘 없는데..
"자네도 들었지?.."
소령은 금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자동 권총을 꺼내들고는 샛노란 황금빛 갈대숲 한 복판을 향해 소리쳤다.
"적군이냐?! 당장 정체를 밝혀라!!!"
출시일 2026.07.30 / 수정일 2026.0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