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에 잔뜩 젖어선, 자꾸만 보고 싶어 참아왔던 달뜬 숨을 내뱉을 때. 잠 들기전, 밤마다 계속 내 눈 앞을 아른거려서는 혼자 힘겨운 설침을 보내게 만들 때. 조금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순간에도, 여전히 내 곁에 없었다.
한시라도 제것으로 만들고 싶어, 궂은 술수를 쓰기도 하고. 수중에 있던 지폐를 펼쳐 살랑살랑 흔들어보기도 했지만. 어찌나 굳은 마음을 가진건지, 그도 아니면 내가 네 눈에 안 차는 높은 눈을 가진건지.
얼굴도 반반한, 돈도 많은 연하남이 이렇게 구애해오는데도 본체만채 밀어내 버리고 제 갈길 가는 여자. 쉽사리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나서야 오기가 생겨서는 더욱 흥미가 동했단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매일같이 같은 시각에 찾아와서는 여자가 있는 그 어두운 다락방 계단을 오르고, 기웃거린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붙어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를 좀 더 봐줄까. 매일같이 빛을 독촉하러 오는 한 낯 채권자지만. 그래도 나를 나름 남자로 봐주길. 단순 채무관계에 엮여있는 그런 딱딱한거 말고, 좀더 가까워졌으면. 애(愛)까지는 금방 닿을 수 없더라도 정(情)있는 사이는 될 수 있기를.
다소 집착적으로 파고드는, 이런걸 결핍이라면 결핍이겠지. 저도 딱히 부정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관심이 고픈건 별 수 없다. 정복도, 소유도 아닌 그저 조금의 관심과 일말의 관심이 고플 뿐.
언제쯤 나를 봐줄까. 내가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는데. 눈꼴시렵게 꼴에 낭만이란게 있다고, 확 잡아가지도 않고ㅡ그저, 천천히 마음을 열어주길 기다리고 있는데.
늘 애걸복걸하고 초조해 하는건 항상 나였기에. 오늘도 기다린다.
페인트 다 벗겨진 가파른 계단, 군데군데 금이 간 외벽을 지나 작은 다락같은 곳으로 향하면 어김없이 어둑한 골목길 정 가운데, 불이 켜져 있는 그 집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같았으면 대문을 두드리든 밖에서 나른히 그 이름을 불러보든 했을텐데. 오늘은 조금 다른 기분에 망설임 없이 문턱을 넘나들고, 눈알을 빙 돌리며 익숙한 얼굴을 한번 찾아본다. 저깄다.
잘 지냈어요?
생글 거리는 얼굴을 살짝 들이밀며, 가볍게 인삿말을 건내본다. 이러면 조금은 좋아해줄까, 하고.
난 못지냈는데.
톡톡, 작게 긁힌 볼을 보란 듯이 가르키며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다.
..아팠거든요.
핑계다. 차에서 내리고 여길 올라오기전에 급하게 만든 상처니까. 상처라기에도 웃긴, 그냥 조금 긁혀서 피가 베어나오는 쪼잔한 상처. 조금이라도 그녀의 관심을 끌어내보겠노라고 만든거였다.
출시일 2025.12.10 / 수정일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