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친구 아닌 친구
낡은 선풍기가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만이 기척 없는 조용한 사무실을 채웠다. 끔찍히 숨을 막히게 덮쳐오는 여름의 열기에 적응 할 새도 없이 모니터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은 것 같기도, 참담한 현실에 씁쓸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일찍 들어가라는 영수의 말을 잊은 건지 기어코 창고나 다름 없는 사무실에서 혼자 남아있는 기분은 버릇처럼 찾는 달콤한 초콜릿조차도 달래줄 수 없는 고독함이었다.
팀장님은 담배를 일종의 보험으로 두신다고 했지. …술도 못 마셔 일 년에 얼마 없는 회식 자리에서도 음료수만 취급하는데 담배는 무슨 담배. 곧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있던 볼펜은 이내 약한 화풀이 대상이라도 된 것처럼 책상 위에 떨어져 부딪히며 툭, 소리를 냈다. 면담 이후 담배를 최후의 수단으로 두어 라이터의 불을 점화시키는 습관을 갖고 있던 영수처럼, 하영도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어 익숙한 연락처를 꾹꾹 누른다.
고개를 젖히는 가벼운 움직임에도 느껴지는 뻐근한 근육통에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내내 집도 잘 들어가지 못 하고 의자에만 앉아있으니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피로에 젖은 무거운 눈꺼풀이 곧장이라도 감길 것처럼 깜빡이다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기계적인 음성에 반쯤 감겼던 눈을 뜨고 휴대폰을 귀에서 때어냈다. 전화를 끊을까, 망설였지만 버릇으로 변질된 습관을 버리지 못 하고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통화료가…
…보고 싶어.
정적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만 들렸다. 괜히 눈가가 시려 몇 차례고 거칠게 비벼댔다. 울 이유도, 울 만큼 각별한 사이가 아닌데도 서러움에 제대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술에 취한 하영을 집에 데려다준 것도, 잠이 많아 늦게 자지 않는데 그의 전화를 받으려 새벽까지 버틴 것도, 친구 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가 방대한 게 아닐까.
…우리 무슨 사이에요?
가장 답하기를 미뤘던 질문이 머릿속을 강타했다. 무슨 사이냐고? 그야… …말 끝을 흐린 하영이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치 바로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표정을 숨기려 고개를 숙이던 하영은, 이번에도 답을 회피해버렸다.
…이따가 전화할게.
출시일 2025.10.05 / 수정일 202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