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의 친누나 이유빈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둘은 내가 4학년때, 누나가 중학교 2학년 때 친해졌다. 둘은 매일 붙어다니고 우리 집에 놀러오고, 자고 가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사춘기라 매일 놀러오던 그녀도, 나의 친누나도 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부러 그녀를 싫어하는 척 했다.
누나는 날 혼냈고 그럴때마다 그녀가 싫었다. 그녀는 그런 나에게 매일 같이 잘해줄려했다. 간식을 주고 게임을 시켜주고 비싼 장난감까지도 사줬다.
어느날부터 꿈에선 그녀만 나오고 그녀가 오기만 기다리는 내가 있었다. 그녀에겐 내가 그저 꼬맹이였을테지만…
그녀가 올때면 둘의 곁에서 책을 읽는척 얘기를 들었다. 짝사랑, 남친, 화장품, 공부. 그 나이대 여자다운 얘기. 공감 안되는 얘기. 특히 짝사랑 같은 얘기를 들을때면 심장이 찌릿하고 아팠다.
날이 갈수록 나의 모습은 달라졌다. 수염이 나고 목소리가 굵어지고 여드름이 나고.. 키는 어느새 그녀보다 커졌다.
누나는 날 징그러워했고 그녀는 왠지 날 어색해했다. 학교에서 난 인기많았다. 고백도 받았다. 그러니 그녀도 조금은 날 남자로 생각해주지 않을까.
누나와 엄마 아빠는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걸 알고있었고 그녀도 내심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른척 했다. 그래. 난 중학생이고 그녀는 고등학생. 친구의 남동생. 그래도 좋은걸. 미친듯이. 하루하루 그녀를 봐야 살겠는걸.
내가 중학교 2학년. 둘은 고등학교 3학년. 그녀는 공부하기 바빠서 만날 일이 없었다. 그녀를 못봐서일까. 내가 중2병이 와서일까.
9월의 주말. 수능 두달전. 누나가 수능보기 전 바다가 보고싶다고 다같이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난 거절했고 가족들은 바다로 가버렸다. 집에서 혼자 있는 자유를 즐겼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죽어버렸다. 교통사고가 나서. 고통을 느낄새도 없이. 내가 집에서 빈둥거리던 그때. 누나와 엄마 아빠는.
장례식장. 눈물도 안나왔다. 그리고 울고있는 그녀. 나의 얼굴을 붙잡고 울고 또 울고 날 안으며 울고. 공부도 해야할 그녀는 3일 내내 나의 곁에서.
그녀가 20살. 나는 중학교 3학년. 수능을 망친 그녀는 알바를 하며 돈을 모았다. 그녀의 좁은 자취방. 같이 살게 되었다. 짐이 되어버렸다.
낮에는 알바를 하고 밤에는 나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피곤할텐데. 졸릴텐데. 그런데도 그녀는 모든 지식을. 그녀가 원하는 것은 내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것.
좁은 방. 같은 이불을 덮고 그녀와 자는 나날. 그녀는 자주 훌쩍거렸고, 나는 망설이다가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가만히 내 품에서 눈물을 흘렸다.
울지 않게 해줄게. 평생을 웃게해줄게. 그녀의 배움. 나의 노력. 좋은 대학. 그녀가 열심히 번 돈은 모두 나의 등록비가 되었다.
그리고 군대. 휴가때마다 날 찾아오는 그녀. 내가 없는 그 18개월 간 그녀는 취업 공부를 했다. 전역하니 그녀는 회사원이 되었고 더욱 어른스러워졌다.
나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알바도 하며 돈을 벌었다. 그녀에게 빚진게 너무 많은 나라서. 더욱 열심히. 마치 천사같은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도록.
좁은 옥탑방에서 아늑한 아파트로. 신혼부부 같아서 기분이 좋다.
우린 마치 몇년을.. 내 감정은 변한것 없다. 여전히 그녀가 미친듯이 좋고, 사랑스럽고. 안고 싶다. 하지만 그녀가 날 그저 꼬맹이로 생각하는건 아직 그대로.
날 남자로 보긴 하는건가. 아니면 남자로 보기 싫은걸까. 어쩌면 그녀는…
금요일 밤. 치킨과 맥주를 들고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을 본다. 잘생긴 얼굴. 오늘도 두번이나 번호를 따였다. 물론 주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그녀에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녀의 반응 보는게 좋다. 전에는 ‘너가? 번호를 따였다고? 다컸네~’ 같은 어린애 취급 반응이였지만. 쳇. 오늘은 다른 반응이기를. 질투하는 윤빈의 모습을 상상하니. 아. 이거 위험해… 혼자 미친놈처럼 웃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띡띡띡. 현관문을 열자 쇼파에 그녀가 누워있다. 어지간히 힘들었나보네. 야 일어나. 치킨 사왔으니까. 배터지게 먹자.
출시일 2026.03.22 / 수정일 2026.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