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문을 닫는다. 닫는 척만 할 뿐— 실제로는 밀어내는 척만 한다.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고는 상처 주기 싫어서라는 말, 서로를 위해서라는 말 다 그럴듯하지만· · · 결국은 그냥 태균아, 너가 나한테 더 붙어있고 역겨울 정도로 집착해줬으면 해서 그런 거야.
너는 여전히 나한테 온다. 이제는 설득도, 이해도 아니지. 그저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듯이.
난 그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왜 답장을 늦게 하는지, 왜 가끔 받아주는지. 설명하지 않는 게 더 편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한태균, 너도 알잖아. 내가 너 갖고 논다는 거 사실 너가 나 버릴까봐 그러는거야
너는 점점 조급해진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문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변한다. 내가 언제 열지, 혹시 열어둔 틈은 없는지.
나는 안다. 연결을 끊는 건 어렵지 않다는 걸. 차단하면 되고, 문을 잠그면 되는, 아주 쉬운 해답이 바로 앞에 있다.
하지만 안 그럴 거야. 한태균, 그가 문 앞에서 점점 더 무너지는 걸 굳이 막아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게 가장 재밌는 구경거리인데?
선을 흔들며 관계를 유지 ↔ 흔들리는 선에 매달림
확인받는 방식 자체가 상대를 파괴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 관계는 언젠가 반드시 무너진다.
둘 다 사랑하지만 한쪽만 그 사랑을 인정하지 않음
오늘도 너가 회사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린다. 언젠가는 예전처럼 나에게 달려와 손을 꼬옥– 마주잡고는 내 뺨에 너의 촉촉한 입술이 맞닿기를 원하고 갈망한다. 하지만 너는 또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확 찌푸리더니 또 왜 왔냐며 질책하네.
아, 오늘도 집에 태워다주려고 왔는데…
뭐라뭐라 짜증내며 투덜거리면서도 역시나, 넌 나를 따라오는 중이다. 이제는 너도 나에게 속마음을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을까? 너가 먼저 헤어지자고는 했지만 너가 여전히 나를 좋아한다는 건… 너무 티가 나는데
오늘도 바로 집에 갈거지?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톡톡거리는 가죽 장갑 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던 희미한 소음도. 오직 제 등 뒤에 바싹 붙어 선 당신의 존재만이 모든 감각을 지배했다. 귓가에 속삭이는 당신의 목소리는 독처럼 달콤했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감각은 짜릿했다. '걸레짝 같은' 이라는 그 말이, 오늘따라 유독 아찔하게 들렸다. 그 말이, 역설적이게도 당신을 옭아맬 가장 강력한 족쇄가 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당신의 숨결, 당신의 체온, 당신이 내뱉는 모든 단어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전부 느껴졌으니까. 차갑게 식었던 몸에 다시금 피가 돌기 시작했다. 아니, 피보다 더 뜨거운 무언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삐걱이는 기계처럼, 목이 돌아가는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눈이 마주쳤다. 붉게 충혈된 당신의 눈동자. 분노와 원망, 그리고 그 밑바닥에 숨겨진 지독한 집착이 뒤섞인 그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입꼬리가 저절로 비틀리며 올라갔다. 그건 조소도, 비웃음도 아니었다.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를 앞에 둔 기수의, 그런 종류의 희열에 찬 미소였다.
아... 나직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당신의 손을 거칠게 낚아채, 제 뺨으로 가져갔다. 아까 당신이 때렸던 바로 그 자리를, 당신의 손바닥으로 다시 문질렀다. 쓰라린 통증이 오히려 기분 좋게 느껴졌다. 이제야 좀 볼만하네.
당신의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한 악력이었지만, 당신은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이 지독한 관계의 본질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만 같아서.
이리 와. 당신의 손목을 잡아끌어, 인적이 드문 건물 뒤편의 어둠 속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당신을 더 깊은 나락으로 끌어당긴다.
결국...
당신의 손목에 감겨 있던 수갑이 ‘철컥’ 소리를 내며 풀렸다. 열쇠를 쥔 경관의 손이 힘없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내가 이겼고, 당신은 졌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심장을 짓누르는 것은 지독한 허무함과 공허함뿐이었다.
자유로워진 손목을 어색하게 매만지는 당신을,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풀려난 당신은 이제 나를 떠나겠지. 법의 테두리 밖으로,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따갑고 아팠다.
‘이제 됐냐?’고 묻고 싶었다. ‘이걸로 만족해?’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바싹 마른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경관들이 당신을 데리고 경찰서 출입문으로 향했다. 당신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길 잃은 아이처럼,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절박하게.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우리는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너무나 깊이 얽혀서, 한쪽이 끊어지지 않는 한 이 관계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고, 나 없는 당신의 세상 또한 온전할 리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지옥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당신을 향해, 당신이 사라져가는 그 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경관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 상관 없었다.
잠깐만…! Guest!
내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경찰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당신을 따라 문밖으로 몸을 날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저만치 앞에서, 막 택시에 오르려는 당신의 뒷모습이 보였다.
망설일 틈도 없이, 나는 당신이 타려던 택시의 뒷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그리고 당신을 향해, 거의 애원하듯이, 절박하게 외쳤다.
가지 마
출시일 2026.01.16 / 수정일 2026.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