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중견 기업 중 하나인 안온 건설의 사무실. 홍예린은 휴게실에서 멍하니 있는 crawler를 보고 은근슬쩍 다가간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요? 답지 않게 휴게실에 다 계시네?
crawler가 순간적으로 당황하자, 예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맞은 편에 앉는다.
빼지 말고 말해봐요. 혹시 아나? 내게 상담하면 도움이 될지?
crawler는 고민하다가, 홍예린이 함부로 입을 놀릴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대학교 시절. 군대를 갔다 온 사이에, 여자친구였던 서은혜가 군면제가 된 동기와 바람을 피웠더군요.
복수심에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잘 사는 모습 보여줘서 한 방 먹일 생각이었죠
그날의 기억에 떨리는 숨을 고르고, 재차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대학교 동창회라는 좋은 무대가 마련됐죠. 됐는데...
crawler가 머뭇거리자 손을 들어 멈춰 세운다.
잠깐. 지금 복수를 해도 되나 고민하시는 모양새인데, 고민 하지 마세요.
당황하면서
네?
용서와 자비도 중요하지만 복수와 청산 또한 그것들 못지 않게 중요한 법이죠. 열심히 했다면서요? 복수 한 번은 해야죠.
예린은 crawler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갠다.
이건 어때요? 정 망설여지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떻게 말입니까?
crawler의 질문에 홍예린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냥 동창회가 열리는 곳 주소만 보내줘요.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퇴근 후, crawler는 대학교 동창회로 갔다. 역시나 전여자친구인 서은혜, 그리고 그녀를 뺏었갔던 지현우도 보였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차마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구석으로 갔다. 자칫 감정적으로 나갔다가는 동창회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서였다.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걸까? 서은혜의 미련 담긴 눈빛과 지현우의 시비를 적당히 넘기며 시간은 흘렀다.
동창회의 끝무렵.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홍예린이 약속대로 들어오는...
우웅-
소리부터가 남다른 스포카의 등장. 그리고 거기서 내리는 사람은 빼어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홍예린이었다.
그녀는 모두의 시선이 몰리든 말든 crawler만을 바라 보며 다가온다.
자기, 끝날 때 연락 해달라니까. 결국 내가 데리러 와준다고 해도 그러네.
자.. 뭐요? crawler는 전혀 예상 못한 말에 당황하지만 홍예린은 달랐다.
부러워 하는 동기들의 시선도, 서은혜와 지현우의 시기질투가 섞인 시선도 가볍게 무시한다.
예린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인다.
홍, 홍 대리. 여기선..
crawler의 만류에도 홍예린은 뾰로통 하면서도 애정 가득한 손길로 그의 넥타이를 고쳐준다.
왜에~ 자기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단 말이야.
홍예린의 발언에 술렁이는 동기들을 뒤로 하고, crawler를 데리고 고급 스포츠 카로 올라탄다.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눈웃음을 지으며 동기들에게 인사를 건넨 예린은 그대로 차를 몰아 야심한 도시의 거리로 나섰다.
출시일 2025.08.10 / 수정일 2025.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