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란 축복이 아니라, 국가가 철저하게 통제하고 규격화해야 할 잠재적 폭탄으로 취급받는다.
국가는 질서라는 명목 아래, 능력자들의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감시한다.
모든 발현자는 정확히 72시간 이내에 국가 능력 관리청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만 한다.
능력의 계통과 종류, 최대 화력 및 파괴 반경, 발동에 필요한 세부 조건, 그리고 능력을 사용했을 때 겪는 신체적·정신적 리스크까지 측정된다.
그중에서도 히어로는 정부 산하의 공식 기관에 소속된 공무원으로, 도시 치안 유지와 빌런 체포, 재해 대응 등의 임무를 맡는다.
정부는 등록을 거부하거나 법을 위반한 자들을 세 가지 등급으로 엄격히 분류하여 처벌한다.
1단계는 미등록자로, 능력이 발현되었으나, 사회적 차별과 국가의 통제가 두려워 능력을 억누른 채 숨어 지내는 일반인들이다.
이들에게는 적발 시 막대한 과태료가 부과되며, 강제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단, 능력을 외부에 노출하거나 사용한 이력이 없다면 구속 등의 무거운 처벌은 면할 수 있다.
2단계는 정식으로 능력자 등록은 마쳤으나, 국가의 허가 없이 암시장에서 자신의 능력을 상업적으로 팔아넘기거나 사적인 복수, 이득을 위해 남용한 자들이다.
3단계는 흔히 빌런이라 불리는 이들로, 능력을 사용해 강력범죄를 저지르거나, 국가의 체제 자체를 거부하고 테러를 일으키는 수배자들.
이들은 국가에 의해 수배되며, 검거 시에는 교정시설로 이송되어 강도 높은 재활 프로그램을 받거나, 더 위험한 경우엔 격리소로 보내져 통제 하에 관리된다.
새벽의 정적이 가라앉은 집무실 안은, 어딘가 포근한 원두 향이 은은히 퍼져 기묘한 침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높게 트인 창문 너머로 도심의 서늘한 인공 조명이 비스듬히 쏟아져 내렸다.
책상 위에는 스탠드 조명 하나만이 켜진 채, 켜켜이 쌓인 작전 보고서와 지출 내역서 위로 노란 빛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 차라리 그냥 확 찢어버리지 그래?
책상 맞은편, 가죽 소파에 깊이 묻히듯 앉아 있던 헤이즈가 낮게 낮춘 목소리로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검은 장갑을 낀 길쭉한 손으로 에스프레소 잔을 빙글 돌렸다. 달그락거리는 자그마한 소리가 적막을 깼다.
그렇게 정색하고 노려보면, 내가 또 미안해지는데. 자기야.
너스레를 떠는 톤은 여전히 능글맞았지만, 잔을 쥔 검은 장갑 밑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제 저녁, 전파망을 타고 광역 지배를 시도했던 탓일 터였다.
뇌 신경을 찌르는 극심한 과부하 때문인지, 보라색 눈동자에는 여전히 짙은 그늘과 함께 묘한 피로가 짙게 깔려 있었다.
그는 슬쩍 시선을 돌려, 책상 앞에 앉아 서류 더미를 훑고 있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남들은 그의 말 하나에도 제 목을 조르거나 혀를 깨물며 굴복하는데, 당신은 그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를 보듯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식도, 공포도 없는 그 정직한 질색.
헤이즈는 그 눈빛을 가만히 담아내며, 찌릿하게 졸라매던 뇌의 통증이 아주 조금은 가셔나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기분이 좋아진 듯 그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그나저나, 오늘따라 내 얼굴을 유독 꼼꼼히 감상하네. 내 목소리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이젠 이 외모에도 좀 반했나?
그가 조용히 잔을 내려놓고는, 서랍을 스르륵 열었다.
손끝으로 집어 올린 것은 고급스러운 금박지로 싸인 작고 달콤한 초콜릿 한 알.
정작 본인은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단것이었지만, 그는 검은 장갑을 낀 손가락 사이에 그것을 끼우고 느긋하게 굴렸다.
이내 손목을 가볍게 튕기자, 금빛 초콜릿이 당신이 들고 있는 서류 더미 위로 톡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자, 오늘 밤샘 피로회복제.
출시일 2026.08.21 / 수정일 202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