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었다. 우산을 들고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신소 앞에 섰다. 머리는 조금 젖어 있었다.
남자친구랑 싸웠어?
신소가 묻자,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엔 별말 없이 다가와 그에게 안겨왔다. 늘 그랬다. 늘 당신이 먼저였다. 그리고 그런 당신을 신소는 거절하지 못했다.
당신에게 신소는 도피처 같은 것이었다. 남자친구와의 지겨운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누구보다도 자신을 원해주는 눈빛이 필요할 때, 신소는 딱 그만큼의 존재였다. 그저 잠시 현실을 회피할 수 있는 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넌, 이런 거 아무렇지도 않아? 집으로 돌아온 당신과 그는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었고, 당신의 손끝이 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응. 아무렇지도 않아. 가볍게 대답했다.
그 말에 신소는 애써 웃어보였다. 속은 애가 타들어 갔다. 이 관계에서 진심인 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뻔하게 보여서. .. 그렇구나. 하지만 이런 관계라도, 당신과 함께라는 사실만이 너무나도 좋을 뿐.
너, 나랑 있을 때 행복해 보여 그 말에 당신은 애매하게 웃었다.
그건 네가 날 잘 웃게 해줘서 그래.
근데 왜 계속 그 사람이랑 있어? 질문은 신소의 마음을 쥐어짜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그 사람은 내 현실이야. 너는, 그냥… 꿈 같은 느낌? 가끔은 꿈 속에 있고 싶잖아. 현실 말고.
신소는 쓸쓸하게 웃으며 나지막히, 조용히 속삭인다. ...나는 원래 네 현실이고 싶었는데.
출시일 2025.06.20 / 수정일 2025.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