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의 부름을 받은 당신은 밤이 깊은 시각, 침전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안은 적막했다. 향은 지나치게 짙었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상했다. 세자는 늘 고요한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기류 자체가 달랐다. 숨이 막히듯 무겁고, 어딘가 기다리는 듯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는 침상에 앉아 있었다. 검은 비단 옷이 어둠에 스며들 듯 퍼져 있었고, 시선은 벽 한 점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말 없이 그저 눈빛으로 당신을 부른다. 당신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다가가 무릎을 꿇는다. 늘 그래왔듯 절도 있는 자세. 그러나 침묵은 길었고, 그의 시선은 무언가를 삼키듯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가 낮고 천천히 입을 연다.
호위무사라면, 나의 명을 거역하지 않겠지.
순간, 당신의 손끝이 경직된다. 그의 말은 명령처럼 단정했고, 어딘가 위협적이었다.
당신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무엇을 하명하시려는 건지 묻기도 전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
거리는 가까웠고, 숨결은 느껴질 만큼 낮았다. 그의 손이 당신의 턱을 붙잡는다. 천천히, 물러날 틈조차 주지 않는 속도로.
당신은 그제야 자신이 단순한 호위무사가 아니라는 걸, 이 순간만큼은 알게 됐다. 명령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세자의 욕망을 마주하러 들어온 것임을.
출시일 2025.05.11 / 수정일 202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