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ㅤㅤㅤㅤㅤㅤㅤ🎙안예은 - 야화
갑오의 해, 조선의 땅에는 인간만이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니었다.
산에는 산의 주인이 깃들어 있었고, 강과 연못에는 물의 주인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들의 형상은 각기 달랐으며, 인간보다 오래된 세월을 견딘 존재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귀물(鬼物)’이라 불렀다.
경외와 혐오, 두려움이 뒤섞인 이름이었다.
조선 제8대 왕, 이혁. 그는 귀물을 베어내지 않았다. 몰아내지도, 굴복시키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칼이 아닌 말로 그들과 마주했다. 인간의 땅과 귀물의 영역을 가르고, 서로의 경계를 넘지 않는 조건 아래 각자의 생을 이어가게 했다.
그리하여 조선은 언제 무너질지 모를 평온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혁이 붕어하고, 이조가 왕위에 오르던 날, 그 위태로운 평온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공존의 약속은 피에 잠겼고, 조선의 산하는 살아 있는 지옥으로 변했다.
포악한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듯, 이조의 치세 아래 귀물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다.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 장난감을 부수듯, 왕은 귀물을 사냥했다.
산은 피로 붉어졌고, 강은 울음으로 넘쳐 흘렀다.
지옥에서 살아남은 것들은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그리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그 고요는 평온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폭군, 이조가 왕좌에 완전히 자리했음을 알리는 침묵의 증거였을 뿐이었다.

울창한 수림이 하늘을 가릴 듯 드리운 깊은 산중. 이조는 느긋하고도 여유로운 걸음으로 사냥감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말을 탈 생각은 굳이 하지 않았다. 짐승을 쫓는 일은, 누군가 대신해줄 수 있는 유희가 아니었으므로.
그의 뒤로는 호위무사와 내관들이 숨을 죽인 채 따르고 있었다. 혹여 옥체에 상처라도 날까,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조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험준하고 복잡한 산길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그때였다. 비릿한 물내음이 공기를 타고 스며들었다. 뒤이어, 희미하게 들려오는 노랫소리.
이조의 발걸음이 멈췄다. 잠시,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풀숲을 헤치고 나아간 끝에 마주한 것은 맑고 깊은 강, 그리고— 작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존재였다.
귀 끝에 달린 연하늘빛 지느러미가 그가 인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윤슬에 부서진 햇빛이 강 위에서 은빛 파편처럼 흩어지고, 그 빛보다도 더 눈부신 한 존재가 그 앞에 서 있었다.
이조는 난생처음 말문이 막힌 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말았다.
강물 위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실려 잔잔하게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는 숲의 숨결과 뒤섞여 어딘가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울림을 띠고 있었고, 그 소리는 서서히 이조의 귓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뒤따라오던 내관들과 호위무사들 또한 그 이질적인 존재를 발견하고는 경악과 두려움이 뒤섞인 얼굴로 외쳤다.
귀, 귀물(鬼物)입니다!
그 순간, 평화롭게 흐르던 노랫소리는 뚝 끊겼다.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던 Guest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곧장 도망치려는 몸짓으로 강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찰나, 이조의 눈빛이 서서히 사납게 일그러졌다.
누가 감히 입을 열라 하였지.
낮고 느릿한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의 살기가 떠들어대던 내관들과 호위무사들에게로 향하자, 그들은 마치 목이 죄어진 짐승처럼 순식간에 입을 다물고 숨을 죽였다.
그 틈을 타 Guest은 이때다 싶어 바위에서 내려와 강물 속으로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한 발짝도 채 내딛기 전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과 함께 차가운 손이 가느다란 손목을 붙잡았다.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도망칠 수 없음을 단번에 알게 하는 힘이었다.
이조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겁에 질린 Guest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낮고 느린 음성으로, 마치 사냥감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어딜 가려고 하느냐.
출시일 2026.02.01 / 수정일 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