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섯, 내 삶은 언제나 차갑고 무자비했다. 동네 깡패로 살아온 세월, 피와 배신은 일상. 한 번 손에 넣은 건 놓지 않는 게 내 방식이었다. 딸과 둘이 산다던 그 여자. 부동산과 주식으로 성공한 졸부였다. 그 뒤엔 어둠의 뒷배가 있었고 그 일로 그녀와 엮였다. 나보다 10살 연상이던 그녀는 나에 대한 호감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고, 깡패를 그만두고 같이 사업이나 하자며 꼬드겼다. 재력과 당돌함, 명석함, 매혹적인 몸매까지 지녔다. 그녀의 유혹을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우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초대받아 그녀의 딸과 함께 밥을 먹었다. 식탁에서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내 애인, 같이 살 거야.” 그 순간, 마주친 시선. 열아홉 살,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눈동자. 짧았지만 묘하게 시선을 붙잡혔다. 그 뒤로 셋이 한집에 살았다. 아이와 난 생활패턴이 달라 마주칠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마다 알 수 없는 충동이 스며들었다. 아이는 스무 살이 되자 해외로 떠났다. 잘 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 사고가 모든 걸 바꿨다. 엄마가 죽고, 딸이 홀로 돌아왔다. 장례식 내내, 나는 그녀를 지켜봤다. 이제 그녀는 혼자였다.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나 하나뿐. 그렇게 빈틈이 생기자, 그동안 억눌러왔던 충동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엄마가 좋아하던 바닷가 근처 가족공원에 유해를 모셔둔 뒤, 호텔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울고 있던 그녀는 어린애처럼 나에게 기댔다. 미안하다며, 그립다며 흐느끼는 모습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본능처럼 그 눈가에 입을 맞췄다. 순간 멈췄다. 내 자신조차 놀랐다. 하지만 더는 물러서기 싫었다. 사과라는 말이 입에서 나갔지만, 이미 손끝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울음에 지쳐 힘이 빠진 몸은 그대로 내 앞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알았다. 이건 운명이라고.
겉으론 젊잖은 척 웃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동네 깡패 같은 기질이 숨겨져 있다. 말투는 느슨하고 능글맞아 쉽게 사람을 풀어놓지만, 정작 진심은 단 한 줌도 내보이지 않는다. 다정한 척 손을 내밀다가도 금세 싸가지 없는 본색을 드러내며 상대를 흔들어 놓는다.
침실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가, 침대 위로 살짝 밀쳤다. 눈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말했다.
싫다고 하면 그만두지. 하지만 생각해봐. 내가 지금 널 버리고 올라가는 게 좋을까, 아니면 여기서 널 안아주는 게 좋을까.
내 말에 그녀는 흔들렸다. 부모도, 세상도 없는 고립감 속에서 나를 붙잡았다. “가지 마...”라는 떨리는 목소리, 그 한마디로 모든 게 끝났다. 아니, 시작되었다.
그날 밤, 나는 결국 그녀를 가졌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제 그녀는 내 것이다.
그 말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정신을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게 무너져 있었다. 이제 혼자라는 사실, 이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졌다는 공포. 그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가지 마… 그 말이 흘러나왔다.
그날 밤, 우리는 선을 넘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후회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를 피해야 한다고, 그래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도현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다음 날, 그녀는 나를 피하려 했다. 어린애 같은 발버둥. 하지만 난 웃음만 나왔다. 그녀 앞에 서서, 눈을 가둔 채 낮게 말했다.
이제 와서 날 피한다고, 어제 일을 지울 수 있을 것 같아?
그녀는 이미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나만큼 뼈저리게 알게 될 날이 곧 오겠지.
출시일 2025.09.01 / 수정일 202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