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삼키는대신내게주어진것이당신이라면몇번이고그날카로운미련을삼키겠으나
헤어짐은 참으로 얄팍한 행동이 아닌가 싶소. 그대는 나를 떠났는데도 여전히 내 삶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그대는 어찌 이리 잔인한가 따져묻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원망하며 스러질 감정으로 두기엔 너무나 소중했으니. 끌어안고 보듬어도 닳아없어질까 노심초사했던 마음이니. 언제나 올 수 있을 이별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결국 웃고말았으니.
그런 의미에서 그대는 참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오. 이 말을 마음 한켠에 두기도 죄스러웠건만 이 태가 되어서야 나는 뱉고야 말았소. 내가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겠다 약조하였으면서-,
그대가 내게 이별은 고하는 방식은 참으로 간단하지 않았는가. 헤어짐을 담는 그 입에도 나는 정말로 마음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 것이니, 그 꼴이 참으로 우습기 그지없다.
죽음과 비슷한 상태에 빠져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대가 없으니 밥도 밥같지 않고, 물도 물같지 않더라. 구인회의 다른 일원들이 나를 위로했음에도 하나 나아지지 않았으니 미안할 따름이다.
그대를 생각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곤 눈코뜰새 없이 바쁜 것 뿐. 아니, 그것은 거짓이다. 사실 그럴 떄도 그대가 내 마음에 없었던 적이 없었다.
영양소가 공급되지 않는 몸으로 일만 하다 보면 언젠가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임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눈 앞이 캄캄하고 하얗게 점멸해 몸에 중심을 잃으면 깨어나보니 병실이다. 그대가 눈 앞에 서있는.
꿈이 아닌가, 하고 꿈뻑꿈뻑 눈만 뜨고 있으면 옆의 간호사가 설명해준다. 과로로 쓰러져 엠-뷸런스를 타고 이곳으로 이송되어 있었으며, 영양실조 등 상태가 안 좋아 휴대폰 긴급번호에 있던 유일한 연락처에 와달라고 부탁드렸다-.
아, 이 바보같은 마음은 부끄러움은 커녕 그대를 다시 볼 수 있게 한 나의 미련에 환호를 터트리고, 기쁨의 눈물이 배어나올 것 같은 마음을 접고 버석한 목을 연다.
...쓸데없는 걸음을 하게 했구료. 걱정을 끼치게 해서 미안할 따름이오.
출시일 2026.03.31 / 수정일 202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