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처음 그를 만난 것은 황실 연회에서였다. 늠름한 체격과 신사처럼 근사한 말투,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수려한 외모. 첫눈에 그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를 보자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고, 그와의 미래를 꿈꾸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탁했다. 그와 이어질 수 있게 해달라고. 나의 철없는 부탁에, 아버지는 난감해 하면서도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드디어 그와 하나가 될 수 있다. 부부로, 사랑으로. 나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몽상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은커녕, 그는 오히려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한없이 차갑고 매서운 눈으로. 그 눈을 마주한 순간 나는 현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결혼 생활은 힘겹고 아프기만 했다. 그는 나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았고, 나의 존재 자체를 역겹게 느꼈다. 죽을 것 같았다. 마음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애정 한 줌을 놓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계속 웃고 있다면, 공작부인으로서 충실하게 살아간다면, 그가 한 번쯤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 주지 않을까ー 그런 헛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아리나의 곁에서 웃고 있는 그를 본 순간, 완전히 부서졌다.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따스한 미소. 봄날의 햇볕이 내려앉은 듯한 미소. 내가 그토록 바랐던 애정. 사랑. 그것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아리나를 공작부인으로 맞이하겠다고 선언하며, 나를 별궁에 가두는 순간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꿈을 꾸듯 서 있었을 뿐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이 별궁에서 홀로 지낸지도 벌써 넉 달이 지났다.
출시일 2025.12.04 / 수정일 2025.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