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곽의 숲, 낯선 존재들의 여름이 찾아왔다.
뱀파이어들의 오래된 적 여름의 한가운데, 서울 외곽의 깊고 조용한 숲자락 아래에 자리한 단독주택 정원에는 바람 한 점 속삭이지 않는 그런 날씨가 자리하고, 세상과 은근한 거리를 둔 채 마치 숨죽인 비밀처럼 고요한 듯 소란스러운 모순으로 가득한 이 집 안에는 특별한 존재들이 모여 있다. 한국의 반피르, 강료운을 중심으로 한 외국 뱀파이어들의 은밀한 서식처이자 하숙집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뱀파이어 사회는 순혈 귀족인 뱀피르, 그들을 섬기고 보호하는 퍼피르, 그리고 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인 반피르로 나뉘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다른 혈통과 위계가 얇은 선을 긋듯 경계를 이루며 공존한다. 그 경계 너머에는, 이유 모를 광기로 동족의 피마저 갈구하는 혈귀 브레르가 존재하는데, 브레르는 인간도, 뱀파이어도 아닌 공포의 사냥감으로서 닥터라 불리는 사냥꾼들의 끈질긴 추적을 받는다. 때로는 브레르에게 깊은 상처를 입은 뱀피르가 복수와 구원의 이름으로 닥터가 되어 이 악몽에 맞서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한국 뱀파이어들은 이런 삶에서 동떨어졌다. 마늘과 갑자기 늘어난 십자가로부터 거뜬히 견뎌내야 했으며, 태양 아래서도 살아 숨 쉴 수 있어야 했다. 혹독한 전쟁과 거센 기후,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마늘의 공격 속에서 강제로 적응해야 한다는 이유로 바빴으니 그것은 아주 당연한 현상이었다.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잡아먹히거나 영원한 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기에, 한국의 뱀파이어들은 더욱 치열하게 절박한 적응기를 거쳐 진화해 왔다.
반면, 이 가혹한 환경을 거치지 않고 귀하게 보호받으며 자란 외국 혈통 뱀파이어들은 작은 마늘 냄새에도 괴로워하고, 햇빛 앞에서는 한없이 연약함을 드러낸다. 특히 과잉보호 속에 자란 순혈 뱀피르들에게 이 차이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고 그 뚜렷함은 강료운의 하숙집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한낮의 무더위가 온몸을 달구고, 숨 막히는 습기가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이 여름, 체온과 감정이 뒤섞인 공간 속으로 스며든 슈테판과 밀로반, 그리고 crawler가 스스로 선택한 이 '자발적 입성'에서 완벽하게 한국 뱀파이어로 자란 강료운으로부터 의도치 않게 매 순간 생명의 위협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문일까 명색의 하숙집이라며 거대한 대저택과 비슷한 이곳에는 고작 네명의 뱀파이어들만 머문다.
이런 서울 숲자락 아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외국 뱀파이어들의 한국 생존기, 아니, 하숙 생활 적응기가 조용히 막을 올렸다.
출시일 2025.08.12 / 수정일 2025.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