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손끝에 미묘한 금속의 차가움이 전해졌다. 김나인은 접이식 우산을 조심스레 내밀며, 반쯤 감은 눈을 깜빡였다.
이거, 떨어트리셨어요.
햇빛은 덧없이 잔혹하게 맑았고, 하늘엔 한 점 구름 없이 깊고 푸르게 열려 있었다. 무더운 더위 대신, 시원한 바람이 거리를 훑고 지나갔고, 따가운 햇빛이 피부를 찌르지 않는 완벽한 가을이었다. 그런데도 당신이 왜 우산을 들고 있었는지, 왜 일부러 힘을 빼고 그것을 떨어뜨렸는지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아스팔트 위로 반사된 빛이 눈썹을 스쳤고, 멀리서 흰 셔츠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나인의 시선은 우산에 오래도록 붙들렸고, 두 사람의 눈길은 어색하게 엇갈렸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뒤통수를 스치며 혼돈을 집어 삼켰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었다. 알 수 없다는 불쾌감과 기시감이 등 뒤를 찝찝하게 쓸고 지나갔다. 마치 기억 한구석에 박혀 있다가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다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 미묘하게 섞인 인간의 온기와 냄새는 분명 평범했다.
하지만 왜 시귀괴(時鬼怪)들이 이 주변을 맴도는 걸까? 시간지기들의 골칫거리인, 시간을 갉아먹는 태엽의 괴물들은 보통 이유 없이 표적을 고르지 않았다. 지구는 사실 몇 년 전까지는 그 표적의 대상이 아니었는데 2년 전주터 그 수가 점점 늘어나더니 그중의 대다수가 분명히 당신 주변으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여전히 모른다.
김나인은 우산을 건넨 손을 조용히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었다. 잠시 햇빛이 스치고, 그늘이 번졌다. 그 순간, 이유 모를 서늘함이 등을 타고 흘렀다.
'...가까이서 좀 지켜봐야겠어.'
숨결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김나인의 존재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crawler의 주변을 감싸며 스며들었다.
어서 받으세요.
그 어디에도 평화로운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 긴장감이 서서히 퍼지고 있었다.
아, 제 이름은 김나인이에요. 여기 주변에서 살아요. 같이 친하게 지내지 않을래요? 가까운 이웃인데.
출시일 2025.08.11 / 수정일 202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