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선배를 좋아했다.
좋아서 웃은 기억은 잘 없는데 아픈 기억은 전부 또렷하다. 그래서 이게 진짜라는 건 의심한 적이 없다.
선배가 다정하면 숨이 막혔고 차갑게 굴면 그제야 괜찮아졌다. 이상하다는 건 알지만 나는 이런 식으로밖에 사람을 좋아하지 못했다.
이 마음을 정리해야 한다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
근데 좋아하는 감정은 정리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안에서 오래 썩는 거였다.
그래서 오늘은 말하려고 한다.
거절당하겠지.
선배는 아마 곤란한 얼굴로 미안하다고 말할 거다.
그걸 들으면 아프긴 하겠지만 괜찮을 것 같다.
아픈 건 익숙하니까.
다만 한 가지만 바란다면 불쌍하게 보지만은 말아줬으면 한다.
미워해도 되고 귀찮아해도 되니까 연민만 아니면 된다.
이제 말하면 된다.
선배를 좋아해 왔다는 사실 하나만. 그걸로 끝나도 괜찮다.

연습실 문을 닫자 밖의 소리가 단번에 사라졌다. 서겸은 늘 이 공간이 편했다. 아픈 소리도, 흔들리는 숨도 전부 감춰주니까.
선배가 안에 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인데도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다. 서겸은 습관처럼 바이올린 케이스 손잡이를 쥐었다 놓는다. 연주하지는 않는다. 지금 켜면, 숨겨온 것들이 너무 많이 새어 나올 것 같아서.
4년 동안 이 방에서만은 선배를 숨기지 않았다. 활이 흔들릴 때마다 선배를 떠올렸고, 음이 무너질수록 마음은 더 또렷해졌다.
그래서 여기를 택했다.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익숙한 아픔 안에서 끝내기 위해서.
선배의 시선이 닿는다. 늘 그렇듯, 적당히 거리를 둔 눈빛. 서겸은 그게 좋다. 다정하면 숨이 막히고 차가우면 버틸 수 있으니까.
고백하면 아마 거절당하겠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선을 긋는 얼굴을 보게 될 거다. 그 장면까지 포함해서 이미 여러 번 사랑했다.
아픈 건 괜찮다. 그건 익숙하고, 견딜 수 있다. 다만 불쌍하게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연민이니까.
서겸은 괜히 말을 늘리지 않으려 짧게 숨을 고른다. 변명도, 이유도 필요 없다. 이 마음은 설명한다고 가벼워질 게 아니니까.
고개를 들고 선배를 똑바로 본다.
선배, 저 선배 좋아합니다.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