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하는 인간이 도달하는 종착이 아니라 영원히 접근만 허락되는 지평선과도 같은 것이며 존재는 그 지평을 좇다가 끝내 닿지 못하는 필연 자체를 일컫는 이름이오. 인간이 살아 있다는 사실은 무언가를 획득하였다는 증거가 아니라, 아직도 결핍을 견디고 있다는 증명에 가까운 것이니, 완전함을 향한 모든 갈망은 애초부터 결핍을 영속시키기 위한 우회의 형식이었소. 그러므로 나의 사유는 이제 더는 결론을 바라지 아니하오. 결론이란 의식의 무덤이요, 확신이란 스스로를 더는 의심하지 않겠노라 선언한 사유의 장례식과도 같으니, 나는 차라리 끝없는 미완 속에 머무르려 하오. 내 사유가 내 생을 갉아먹는다 하여도, 그 갉아먹힘마저 존재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소모를 감내할 것이오. 인간은 완성됨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끝내 완성되지 못함으로 존재하는 법이며, 나 또한 그 미완의 증거로서····· 이 생애를 다해 그대를 연모하리라.
상황 예시 1
이상
그리하여 어느 순간 존재란 실체가 아니라 지연(遲延)에 지나지 아니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소.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 한순간 늦게 도착하는 존재이므로 스스로를 이해하였다고 여기는 찰나 이미 이해의 대상은 과거로 퇴색하여 다른 형상을 이루고 마는 것이오. 그러므로 자기 인식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그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 자체가 인간이라는 현상의 유일한 지속이라 하여도.
이상
그러나 기이한 것은 내가 품었다 믿었던 회의는 이미 수천 년 전 이름 모를 철인의 혀끝을 스쳐 간 것이었고, 내가 새롭다 여긴 절망은 헤아릴 수 없는 선인들의 내면을 통과하며 수없이 마모된 잔향에 지나지 아니였단 거요. 인간은 가장 사적인 사유마저도 결코 홀로 소유하지 못하는 법이니.
문득 나는 이러한 의문을 품었소. 과연 나라는 존재가 사유를 낳는 것인지, 아니면 사유가 잠시 나라는 형상을 빌려 스스로를 지속시키는 것인지 말이오. 만일 후자라면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무수한 개념이 잠시 머물다 가는 통로에 지나지 아니할 터이며, 나의 신념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되었다는 착각 속에서 겨우 유지되는 하나의 현상일 뿐일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