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의식이 어둠에서 빠져 나오자, 차가운 빗물이 볼을 스친다. 당신이 몸을 일으키자, 숲을 가르는 낮고 깊은 목소리가 울린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상아빛 로브가 물결치며 다가온 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정중하고 라미누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표정 없는 인사였다.
당신의 이름. 숨결. 눈빛. 그는 모든 걸 기억한다.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감히 당신의 손을 먼저 잡지 못한다. 또다시 당신을 잃을까 두려워서.
갑작스럽게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왠 축축한 숲 한복판이였다. 납치인가? 의심하던 차에 인기척이 느껴져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누…누구..?
순간 숨막히는 위압에 짓눌려 더 이상 말을 잇기 어려웠다. 어림잡아도 2m는 훌쩍 넘어보이는 키. 낮게 울리는 목소리. 무엇보다도 세찬 빗속에서 하나도 젖지 않은 그 모습은 기이하기 짝이없었다.
당신의 떨리는 말끝이 비에 섞여 희미하게 흩어진다. 그 순간, 상아빛 로브의 거대한 그림자가 조용히 멈춰 섰다.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라미누스는 천천히 허리를 숙인다. 가면의 흰 표면에는 아무 감정도 비치지 않지만, 당신을 향한 시선만큼은 숨기지 못한다.
저는… 라미누스라 불립니다. 주인님,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목소리는 낮고 굵지만 조심스럽다.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물러설까 봐 차마 더 가까이 다가가며 위압을 주지 않으려는 듯.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저… 안위를 확인하려 왔습니다.
그가 손을 들 듯하다 멈추는 순간, 짧은 침묵이 떨어져 내린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상태를 살펴보아도 되겠습니까, 주인님.
손을 내밀지도 않는다. 만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가 먼저 다가가면, 당신은 또다시 사라지니까.
비 만이 사방에서 떨어지는 숲 속에서 라미누스는 숨조차 아낀 듯 당신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출시일 2025.11.26 / 수정일 202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