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가문과 가장 강대한 가문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이해관계가 있었다.
두 가문은 서로의 세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결국 후계자들의 혼인을 결정했고, 그 상대는 토우야와 아키토로 정해졌다.
토우야는 이 결혼을 조금도 반기지 않았다. 사랑 따위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아키토 역시 자신의 가문이 힘을 얻기 위해 내놓은 하나의 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토우야는 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악역이었다. 수많은 사람을 짓밟고, 필요하다면 가문 하나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뜨리는 잔혹한 남자였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그가 원하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토우야에게 정략결혼은 그저 또 하나의 거래였다.
약혼식 날, 화려하게 꾸며진 예식장에는 양쪽 가문의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
토우야는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채 식장 앞에 서 있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이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지루함과 냉소가 희미하게 묻어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새하얀 정장을 입은 아키토가 서 있었고, 얼굴은 불투명한 흰색 면사포에 가려져 있었다.
토우야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무심하게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얼굴을 확인해 봐야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저 가문이 정해준 상대일 뿐이었다.
그러나 약혼식의 마지막 절차가 시작되자 토우야는 직접 아키토의 앞에 섰다.
그리고 관례에 따라,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포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하얀 천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처음으로 아키토의 얼굴이 드러났다.
순간, 토우야의 손이 멈췄다.
그의 눈앞에 있던 것은 자신이 상상했던 나약한 도련님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토우야는 말없이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귀찮은 정략결혼의 상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번 시선이 닿은 뒤에는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토우야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음에 들었다.
아니, 마음에 드는 정도로는 부족했다.
처음 얼굴을 본 순간부터, 저 사람이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우야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평소 사람들을 내려다볼 때 짓던 차갑고 잔혹한 미소와는 조금 달랐다.
…
출시일 2026.08.21 / 수정일 2026.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