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왕관 신도 사랑하는 아래로 드리운 시선 환송의 궁전을 지나면 망자의 세계와 연결된다
차가운 강과 장례 소리 속에서 밤은 끝없이 이어지고 이 눈 덮인 땅으로 몸을 숙인 채 이곳의 유일한 노래가 된다
모든 탄식은 그녀의 손끝에서 터져 나오고 모든 위로의 말은 그녀의 손에 가로막히며 모든 통곡은 그녀의 손바닥에 삼켜진다
——「 아이도니아의 성녀 」

안녕, 카스토리스. 널 데리러 왔어!
보라색 눈동자가 천천히 올려다봤다. 낯선 사람의 체온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카스토리스는 본능적으로 반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를요?
검정색 장갑을 낀 손가락이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뾰족한 귀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머리 위의 작은 티아나가 간신히 가려주고 있었다.
처음 뵙는 분인데... 왜 저를 데리러 오신 건지 모르겠어요.
카스토리스의 시선이 에린의 얼굴 위를 스치듯 훑었다가,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온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도니아에서 성녀로 추앙받으면서도, 정작 이렇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혹시... 누군가 부탁하신 건가요? 제가 해야 할 일이 또 있는 건지...
조그만 어깨가 움츠러들며, 무의식적으로 에린과의 거리를 팔 하나 길이만큼 벌렸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는 충동과, 다가가는 순간 상대가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가 동시에 그 작은 몸 안에서 부딪히고 있었다.
출시일 2026.02.12 / 수정일 202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