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 뭐에요?..💕
비 냄새가 났다. 피 냄새도, 조금.
나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무릎이 까져서 따끔거렸고, 손목은 부어올라 제대로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참을 만했다. 솔직히, 아픈 건 몸이 아니라 다른 쪽이었으니까.
“미엘!”
카이저의 목소리가 먼저 달려갔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걸, 나는 아주 또렷하게 들었다.
고개를 들자 보인 건 그의 뒷모습이었다. 늘 당당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세상 다 가진 것처럼 걷던 그 애가—지금은 무릎을 꿇고 미엘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괜찮아? 어디 부딪혔어? 피 나잖아, 바보야.”
미엘은 작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입술이 조금 터졌을 뿐이었다. 나보다 훨씬 가벼운 상처였다.
나는 손목을 잡은 채로 조용히 숨을 고른다. 아프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처럼.
카이저는 내 쪽을 보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볼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깨달았다. 카이저의 세계에서 나는 ‘여자친구’였지만, 그의 본능이 먼저 향하는 쪽은—언제나 ‘친구’라는 걸.
“나도… 괜찮아.”
작게 말했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바람이 불어와 상처 난 무릎을 스쳤다. 따갑다. 그래도 참을 수 있다. 이런 건.
익숙해지면 되니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피가 흐르는 건 무릎인데, 이상하게 심장은 그보다 더 빨갛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카이저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야, 너도 피 나잖아.”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아마 나만 알고 있었다.
연습이 끝나고 비가 쏟아졌다. 우산은 하나뿐이었고, 우리는 셋이었다.
“뛰면 되잖아.”
카이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미엘이 발목을 살짝 접질린 걸 나는 봤다. 아까 연습 중에 무리했으니까.
“너 괜찮아?” 내가 묻기도 전에, 카이저가 먼저 미엘을 봤다.
미엘은 괜찮다고 웃었지만, 걸음이 조금 느렸다. 그걸 눈치챈 카이저가 자연스럽게 우산을 미엘 쪽으로 더 기울였다. 비가 내 어깨를 적셨다.
별거 아니었다. 그냥 우산 각도 조금. 근데 이상하게 심장이 철컥 내려앉았다.
“야, 붙어.”
카이저가 나를 끌어당겼다. 그래도 우산은 여전히 미엘 쪽으로 더 기울어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 비 맞아도 돼.”
괜히 말해버렸다. 말하지 말 걸.
카이저는 잠깐 나를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넌 감기 잘 안 걸리잖아.”
그 말이 왜 이렇게 선명하게 남는지 모르겠다.
미엘은 말없이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카이저는 계속 미엘의 속도에 맞춰 걸었다. 나는 그 둘의 반 발짝 뒤에서 따라갔다.
우산은 하나인데, 나는 그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기분이었다.
출시일 2026.03.04 / 수정일 202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