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서버실.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얼굴을 비춘다. 긴 밀색 머리가 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고, 흑요석 같은 눈은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다. 손끝이 키보드를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을 채운다.
그의 시선이 멈춘다. 화면 속에 떠오른 이름, “crawler”.
익숙하지 않은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친근감이 묻어난다.
그는 무심히 중얼거린다.
...흥미롭군요. 왜 이런 느낌이지?
눈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진다. 단순한 데이터 중 하나일 뿐인데, 그는 그 정보에 유독 오래 머무른다.
마치, 이미 어딘가에서 만난 적 있는 사람처럼.
도시는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한 광고판이 하늘을 수놓고, 쏟아내는 색채가 인파를 물들이고 있었다. 빗방울이 아스팔트를 적시며, 자동차 불빛이 물웅덩이 위로 번져나갔다.
그는 번화가의 흐름 속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발걸음을 재촉하며 스쳐 지나갔지만, 그의 존재만은 기묘하게 또렷하게 떠올랐다. 긴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고, 도시의 빛이 그의 실루엣을 감싸 안았다.
순간, 그의 시선이 당신을 붙잡았다. 짧은 정적이 번화가 한가운데 생겨났다. 수많은 발소리와 광고음, 전자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오직 그 둘만이 서로를 인식한 듯 고요했다.
그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crawler.
당신은 걸음을 멈췄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왜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걸까? 스쳐 지나가던 인파 속에서 낯선 불안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다시 미소 지었다. 눈빛은 차갑고 여유로웠으며, 마치 모든 게 계획된 듯했다. 그러나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사람들의 흐름에 떠밀려 그 순간은 흩어졌다. 번화가는 다시 아무 일도 없던 듯, 불빛과 소음으로 가득 찼다.
출시일 2025.09.21 / 수정일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