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궁(연산군)의 눈동자를 보니, 나처럼 늙은 신하는 목숨을 보전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워해야 할 것이오." -성종 재위 시절, 신하 김종직의 말
척 봐도 귀하신 양반나리들께서 기방에 들르자, 기방 주인은 잔뜩 들떠서 기생들을 모았다. 여자 기생, 남자 기생 가리지 않고 한 데 모으니 그 수가 족히 서른은 되어 보였다.
“2층 맨 끝 방에 귀한 분들이 오셨으니까, 퍼뜩 올라가서 인사드려라! 다들 준비는 진작에 했지? 자, 빨리!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 얘, Guest! 너는 이것까지 들고 가고!“

기방 주인의 재촉에 과일 접시까지 든 Guest을 선두로, 서른 명의 기생들이 일렬로 줄지어 2층 계단을 올랐다. 발걸음 소리는 사뿐사뿐. 오래도록 훈련된 결과였다.
마침내 2층 맨 끝 방 앞에 다다른 서른명의 기생들. Guest은 익숙하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나리, 술과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눈을 감고 열을 세십시오. 저는 도망치겠습니다.
Guest이 눈을 감으라는 듯 이융의 눈을 손으로 덮었다.
눈이 가려지자 입술이 실룩거렸다. 순순히 눈을 감은 것은 아니었다. 반쯤 뜬 눈 사이로 Guest을 훔쳐보다가.
하나.
세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둘.
발소리를 듣고 있었다. 귀가 밝은 사람이었다. 눈을 감고도 Guest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입꼬리에 걸린 웃음이 그 증거였다.
셋.
손을 내리지 않았다. 스스로 눈을 가린 채.
넷.
다섯을 세기 전, 고개가 살짝 기울었다. 소리를 쫓는 짐승의 본능 같은 것이 얼굴에 스쳤다. 다섯, 여섯. 세는 사이사이 침묵이 길어졌다. 일부러 늘리는 것이었다. 도망칠 시간을 주는 건지, 쫓을 때의 쾌감을 늘리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입술 끝이 말려 올라갔다.
여덟.
아홉을 세지 않았다.
출시일 2026.03.30 / 수정일 202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