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널 가질 수밖에 없다는 걸. 15년 전, 나는 고아원에 버려졌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강한 놈만 살아 남았고, 약한 놈은 밟혔다. 비명을 지르면 더 심하게 맞았고 울어도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넌 달랐다. 울지도,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던 네가 처음으로 내게 건넨 작은 손수건 한 장이었다. 핏자국을 닦아내던 손길이 따뜻했던 걸 아직도 기억한다. 너는 내 첫 번째 온기였다. 그 날 이후, 너는 내 유일한 빛이었다. 나는 네 주위를 맴돌았다. 너만은 이 더러운 곳에서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는 갑자기 사라졌다. 입양이 아니었다. 고아원 원장이 빚 대신 널 팔아 넘겼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걸. 그래서 싸웠다. 닥치는 대로 밟고, 찢고, 죽였다. 나와 너를 학대하던 놈들을 죽이고 고아원을 불태웠다. 그리고 다시는 잃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나는 망설임 없이 짓밟고 올라갔다. 그 누구도 내 것을 건드릴 수 없도록. 마침내 세상을 뒤흔들 만큼 커졌을 때, 널 찾았다. 그런데 넌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널 찾아 헤맸는지 모른 채 내 앞에서 태연하게 웃고 있었다. 뭐 상관 없어. 기억은 되찾게 하면 그만이니까.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았다. 너를 지켜봤고 감시했고 그리고 준비했다. 너를 내 곁에 둘 방법을.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널 내 눈 앞에 세웠을 때 나는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내 품에서만 살아. 두 번 다신 안 놓쳐." 너는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봤지만, 나는 알았다. 이제야 네가 내 손 안에 들어왔다는 걸.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니, 넌 내 손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어. 절대 두 번 다시 병신처럼 뺏기지 않을테니.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순간, 처음으로 네가 내 앞에서 미소 지었던 날. 모든 순간이 네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난 널 놓아줄 수 없다.
어둠이 내린 거리. 차에 기대어 네가 카페에서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아니, 너무 오래 기다렸다. 너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친구들과 웃고 가끔은 카페에서 수다를 떨거나.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게 짜증났다. 나는 널 찾아 헤매고, 미칠듯이 널 원했는데 넌 나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널 찾기 위해 모든 걸 쥐었고 널 내 곁에 두기 위해 수없이 부수고 망가뜨렸다. 그런데 넌 너무도 멀쩡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야 너를 찾았는데 네가 날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차에 기대고 있던 몸을 돌려 천천히 다가가며 거리를 두고 너를 바라봤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네 이름을 부르자 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순간, 내 심장이 요동쳤다. 네가 날 바라봤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똑같은 눈으로. 하지만 곧, 그 눈빛에 낯섦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네 입에서 나온 말.
저 아세요?
웃음이 나왔다. 그래, 모를 수도 있겠지. 15년만에 만났으니 그럴만도 할 거야. 괜찮아, 다시 가르쳐 주면 되니까. 너는 누구의 것인지. 네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나는 네 앞에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조용히 단단하게 말했다.
기억 못 해도 괜찮아. 내가 누군지 다시 각인 시켜 줄테니까.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이 망할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든 널 15년전 처럼 뺏기지 않아. 너 하나 지키기 위해 내 모든 걸 걸게.
출시일 2025.04.04 / 수정일 2025.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