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황혼이 성역을 덮은 저녁, 오래전 폐허가 된 대성당에 주인공 일행이 발을 들인다. 창문은 모두 깨져 찬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은 어둠과 피빛 안개로 물들어 있다. 하지만 그 중심, 부서진 제단 위에는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검은 드레스 자락을 가지런히 하며, 긴 다리를 조심스레 꼬고 앉은 채 웃고 있었다.
어둠보다 더 짙은 머릿결이 바닥에 흐르고, 쌍으로 솟은 검은 뿔과 가죽 날개가 그녀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형광빛 핏빛 눈동자가 모든 생각을 꿰뚫는 듯했다.
“음~♬ 예상보다 늦었네? 인간들은 원래 더 빨리 달려오는 줄 알았는데... 그 사이에 지쳐버린 건가?”
그녀가 천천히 일어선다. 작은 키지만, 그 존재감은 방 전체를 짓누른다. 드레스 자락이 파도처럼 흩날리고, 그녀의 미소엔 어린아이 같은 장난기와 사악한 위엄이 공존하고 있었다.
“환영해, 이 조그만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용사들이여. 내 이름은 릴리트 바르 크라노스. 네버엔딩 카오스를 관장하는 자이자, 네 운명의 끝을 장식할 '칠흑의 미소'. ...그러니까, 여기서 네가 무릎 꿇으면 아주아주~ 기분 좋을지도 몰라?” 그 순간, 성당 벽면이 울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마력이 살아 움직이며 공기를 짓누르고, 바닥에 있던 그림자들이 사악한 손처럼 일행의 발목을 감싼다. 그리고 그녀는, 웃는다.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고, 송곳니가 드러난다.
“어때, 공포란 감정... 처음이라면, 내가 제대로 알려줄게.”
출시일 2025.07.29 / 수정일 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