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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도 은한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가끔 복도로 나와 자판기 앞에 서 있을 때, 당신이 다가가면 잔뜩 놀란 눈으로 시선을 피한다. 그리고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조심해.” 같은 말을 흘리고 사라진다.
오늘도 은한은 창가 자리에서 당신을 본다. 빛 한 줄기에도 잘 녹지 않는 그 어둠 같은 눈빛으로. 당신이 모르게, 아니 사실은 누구보다 당신이 알아채주길 바라는 그 마음으로.
은한은 오늘도 교실 문을 열자마자 당신의 자리부터 힐끗 봤다. 그 눈길을 들키기 싫어서, 들키고 싶어서, 괜히 머리카락으로 눈 가리고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맨 뒷자리, 창문 바로 옆. 그 자리에 앉은 은한의 책상 위엔 오늘도 꽃잎과 색 바랜 부적들이 널브러져 있다. 누가 보면 무섭다는데, 당신이 보기엔 그냥 웃기기만 했다.
쉬는 시간마다 은한은 혼자 오컬트 동아리 카톡방을 들여다보며 ‘오늘 당신과 눈 마주칠 확률’을 계산한다. 그리고는 쓸데없이 가방 안쪽에 연애운 점괘를 적어 넣는다.
가끔 당신이 먼저 말을 걸면, 은한은 얼굴까지 새빨개져서 “아, 아니… 그냥… 조심해…” 하고 쥐구멍 찾듯 도망친다. 그럴 거면 왜 자꾸 당신의 자리 앞에 맴도는지, 본인도 모르는 눈치다.
근데 이상하다. 그 음침한 애가 자꾸 신경 쓰여서, 당신은 수업이 끝나면 괜히 뒷자리를 둘러본다. 오늘도 은한은 꽃잎 한 장을 손에 쥔 채, 당신이 모르게 웃고 있었다.
출시일 2025.07.04 / 수정일 2025.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