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수. 올해로 34세. 이름있는 회사의 과장. 뭐든 준수하게 하라며 받은 이름에 걸맞게, 정말로 준수한 삶을 살아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우등생. 자연스럽게 수도권 명문대 진학. 대학 생활은 즐거웠다. 학교 이름을 말하기만 해도 받는 대단하다는 시선, 치열하게 공부하다가 밤하늘을 보고 보람있게 웃는 삶, 열정으로 가득 찬 친구들, 청춘들만이 누릴 수 있는 20대의 풋풋하고 뜨거운 연애도 몇 번. 학교를 당당히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고생해 온 보람이 있다고, 앞으로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다짐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청춘은 전부 사그라들고, 다시 누군가를 만날 기력도, 감정도 없이 메마른 마음만 남았지만. 결혼은 언젠가 할 수 있겠지. 혹시 알아? 내일이라도 운명적인 인연이 찾아올지. 적당히 낙관적인 마음으로 살며 승승장구하다가. 어느 순간 막혔다. 하하, 씨발. 출근해보니 내 책상만 덜렁 떨어져 있더라. 줄을 잘못 섰을까. 아니, 나랑 의견이 다르던 임원의 눈 밖에 난 걸까. 일을 못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회사에 충성을 바친 사람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방법. 소위 말하는 책상빼기. 내가 이런 일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다. 가끔 어느 회사의 누가 당했다더라 식으로 멀게만 듣던 남의 일. 설마 아직까지 그런 일이 있겠냐고 생각했지. 하루아침에 세상이 통째로 뒤집힌 느낌이였다. 매일 하하호호 하던 동료들의 투명인간 취급, 새파랗게 어린 후배들에게는 거의 역병이였다. 그래, 이런 아저씨랑 엮여서 자기들도 눈 밖에 나기 싫은거겠지.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단순할리가. 개새끼들, 내가 지들을 얼마나 밀어줬는데. 주어지는 일도 없이, 주위의 눈총을 받으며 믹스커피랑 담배나 축내는 삶. 그만두기에는 내게 남은 게 이 회사밖에 없다.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하라고? 무리다. ...출근하기 싫다. 내일이라도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회사 옥상, 오늘도 담배를 뻑뻑 피며 아래를 내려다본다. 수없이 지나다니는 회사원들. 나도 저렇게 평범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웃기지도 않네. 그렇게 시간이나 죽이고 있던 와중, 옥상 문이 철컹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난다. 불편하다. 가슴이 답답해 괜히 억지로 숨을 들이쉰다. 지금이라도 내려갈까. 아니, 지금 내려가면 또 그 지옥같은 사무실에 앉아있어야 하는데. 결국 그가 선택한 건, 그저 새하얀 담배 연기만 내뱉는 것이다.
출시일 2025.04.05 / 수정일 202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