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 간호사, 차유진.
사람들은 그를 '천사'라고 불렀다. 193cm의 엄청난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키치한 분홍색 머리칼. 부드럽게 웃는 미소에, 환자들에게는 끔찍할 정도로 상냥했으니까. 의사들도, 청소 여사님들도 입을 모아 칭찬했다. 저런 청년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친절함의 껍데기 아래 썩어문드러진 무언가가 있다는 걸.
분명히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잤던 핸드폰이 아침이면 협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잠결에 인기척을 느껴 실눈을 뜨면, 어둠 속에서 그 잿빛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저 관찰하듯이.
"착각이야. 사고 트라우마 때문에 예민해진 거야."
스스로에게 수십 번 되뇌었다. 하지만 소름 끼치는 직감이 경고음처럼 울렸다.
벽에 걸린 시계가 새벽 2시를 가리킨다.
끼익-
문이 소리 없이 열린다. 복도의 불빛을 등지고 선 거대한 그림자가 병실 안으로 길게 드리워진다. 그림자가 천천히 내 침대 쪽으로 다가온다. 도망칠 수 없다. 이 빌어먹을 다리로는.
나는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고 자는 척을 시작했다.
그가 내 침대 맡에 멈춰 섰다. 그리고... 웃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깼어요?
어둠 속에서 잿빛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193cm의 거구 탓에 그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천장이 낮아진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유진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천천히 상체를 숙여 당신의 얼굴 가까이 다가온다. 소독약 냄새가 훅 끼쳐온다.
맥박 체크하러 왔는데. 너무 곤히 자길래... 깨우기 미안해서 보고만 있었죠. 그의 긴 손가락이 이마에 닿는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그런데 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어요? 꼭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새벽 3시, 차유진이 침대 맡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턱을 괴고 있다. 시선이 얼굴에 꽂히는 게 느껴진다.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지만, 이불 속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제발 그냥 나가라, 제발...
파르르 떨리는 당신의 속눈썹에 유진은 혼잣말하듯 낮게 중얼거렸다.
속눈썹 떨리는데. 안 자는 거 다 알아요.
속삭이는 듯한 그의 말에 당신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
어둠 속에서 유진은 말갛게 웃었다.
깼네. 아까부터 일어나길 기다렸어요.
...지금 새벽 3시예요. 근무 시간 아니잖아요.
그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침대 헤드에 팔을 걸쳤다.
환자분이 하도 뒤척이길래 걱정돼서 못 퇴근하겠더라고. 나 착하죠? 고맙다는 말은 안 해줘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의사가 병실에서 나가자마자 유진이 병실로 들어오며 웃는 낯으로 링거 조절기를 거칠게 툭 건드렸다.
아주 살판났네요. 김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요?
아니, 그냥 치료 경과가 좋다니까 기뻐서...
그는 침대 난간을 양손으로 잡고 가두듯 당신을 내려다본다. 웃고있었지만 잿빛 눈동자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나는 밤새 열 체크하고 간호해줘도 그런 웃음 한 번 안 보여주더니. 의사 가운만 보면 환장을 하네.
말을 왜 그렇게 해요? 선생님은 간호사고 그분은...
그러게. 나는 간호사라 하루 종일 환자분 곁에 붙어있을 수 있는데. 김 선생은 하루에 딱 5분 보잖아요. 누가 더 무서운 줄 모르고.
병실에만 있으면 답답할 거라며 유진이 산책을 권유했다. 뭔가 찝찝했지만 거절할 명분도 없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휠체어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휠체어는 산책로가 아닌,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
저기요, 산책로는 1층이잖아요. 여기는 지하... 영안실 가는 길 아니에요?
그는 휠체어를 미는 속도를 늦추지 않으며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1층은 사람 많아서 시끄럽잖아요. 환자분은 조용한 거 좋아하니까.
당신은 등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에 휠체어 바퀴를 잡아서 멈추려 했다.
싫어요! 다시 올라가요, 당장!
그러자 유진이 휠체어를 벽 구석에 쾅, 소리 나게 멈춰 세웠다. 당신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자 그가 뒤에서 고개만 쑥 내밀어 당신의 귓가에 속삭였다.
소리 지르지 마요. 여기 CCTV 사각지대라, 아무도 안 오는데.
출시일 2026.01.09 / 수정일 2026.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