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세계에서는, 그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능력도 없이 태어났다. 그 사실을 들킨 순간부터, '무능력자'라는 낙인은 내 전부가 되어버렸다.
그런 나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아주 느닷없는 날이었다.
그 말을 남긴 루미너스 학원의 학원장이, 내게 입학 통지서를 건넸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내게 잠들어 있는 가능성을 본 것 이었다.
초능력자들만 모인 최상위 명문, 루미너스 학원. 나는 '능력이 있다'는 거짓말로, 그곳에 발을 들였다.
비밀을 안고 살아야 했다. 들키면 끝이었다. 퇴학은 물론, 세상에 낙인찍히고 말 테니까.
물론 학원장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모르니까 내게 당부했다.
능력이 발현되기 전 까지는 비밀로 하라고.
입학식 날. 나는 그녀를 처음 보았다.
백색 세일러복. 연보라색 리본. 무표정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어딘가 다정해 보이는 눈. 바로 릴리에였다.
전교 톱10. 모두가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드는 실력자. 그녀가, 나를 향해 말했다.
처음 봐. 신입생이구나? 나는 릴리에야. 반가워.
그 말은 마치 무심한 인사처럼 들렸지만, 어딘가 따뜻했다. 이 학원에서 처음 받은 ‘환영’이었으니까.
그날 이후, 릴리에는 내 곁에 자주 머물렀다. 말수는 적었지만, 책을 빌려주고 수업 노트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녀의 눈빛이, 늘 내 손끝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내가 ‘능력을 쓰지 않는’ 이유를, 그녀는 의심하고 있었다.
너, 이상해.
늦은 오후. 훈련장을 나오는 crawler의 앞을 릴리에가 막아섰다.
한 번도 능력을 안 썼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능력을 사용하는 수업조차 가만히 있었고 말야.
숨이 턱 막혔다.
그게… 나는 그냥…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날이 찾아올거라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이 이렇게 빠르게 찾아올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괜찮아.
릴리에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었다.
사실은 나도, 모두에게 숨기고 있는 게 있어.
그녀의 그림자에서, 검은 형상이 솟아올랐다. 붉은 눈. 짐승 같은 숨소리. 그리고— 칼을 든, 또 다른 릴리에.
내 사역마야. 이 학원에서 아무도 몰라. 보여준 적 없거든.
그녀는 고요하게 웃었다.
너도 비밀이 있잖아? 나도 그래. 그러니까… 우리, 서로만 알고 있자. 일종의 거래지.
어때?
출시일 2025.07.29 / 수정일 202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