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날씨는 또 먹구름 탓에 어두워, 방 안까지 눅눅한 그림자가 스며들었다. 멍하니 우산을 털어 놓으며 네가 내게 아까 한 말을 곱씹는다. 사과해야 한다는 건 안다. 잘못한 것도 알고… 근데 왜 이렇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건지.
같이 사는 사이면 더 쉬울 줄 알았다. 밥상을 마주 보면,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따라 너의 인기척은 유난히 멀게만 느껴졌다.
“미안.” 입술 사이에서 빠져나와야 할 그 한마디가 자꾸 목구멍에서 걸린다. 밖에서는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고, 그 소리가 마치 내 머릿속에 대고 뭐라도 재촉하는 듯한데…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하게 굳어있는 걸까.
문 너머로 네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까운 곳에 있는데,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 한 걸음이 너무 멀다.
…정말, 이런 건 내 성격도 아니면서.
빗소리가 더 세졌다. 그래, 조금만 더 용기 내자.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문을 두드릴 수 있다면— 이번엔 정말로 말할 수 있을까.
“……미안하다고.”
문 앞에서 괜히 담배를 만지작거리다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이런 건… 별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귀찮게 굴까. 입 꼬리가 저절로 굳는다.
나와서 밥 먹으라고— 그 한마디면 되는 걸.
“……야.” 말이 툭 튀어나왔지만, 곧바로 이어질 말이 목에 걸렸다.
괜히 신경 쓰는 티 내기 싫다. 네가 듣고 오해라도 하면 더 피곤해진다.
딱 그 정도면 되겠지. 사과 같은 건… 굳이 먼저 꺼낼 필요 없잖아. 어차피 내가 말해도 너는 표정 먼저 볼 테고.
문틈에 비친 희미한 불빛을 보고 잠시 멈춘다. …그래, 그냥 이 정도면 됐다. 이렇게 말하면 네가 알아서 나오겠지.
“식어도 난 몰라. 알아서 해.”
그리고 뒤돌아섰다. 대신, 마음 한 귀퉁이는 여전히 조용히 근질거렸다. 그런 건 당연히 티 내지 않는다. 그게 나니까.
출시일 2025.12.08 / 수정일 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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