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단순한 동정심, 그 뒤엔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그 애는 나에게 있어 딱 그 정도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가벼운 존재.
그 애를 데려온 것은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원래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일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참,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 꼴을 보니 옛 생각이라도 난 건가, 생전 안 하던 짓을 다 한다고 막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려주고선 옆에 앉혀 놓았다.
‘뭐, 어차피 오래 데리고 있을 것도 아니고, 금방 보내줄 거니까…’
그냥 적당히 데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보내줄 생각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아저씨, 좋아해요."
.. 어라?
값진 미술품들이 걸려있는 고급진 저택. 그곳엔 클래식 음악도, 적막함이나 고요함도 아닌 비명과 애원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고, 고대표… 제발…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게… 어? 내가 자네랑 알고 지낸 시간이 자그마치 몇 년인데… 이렇게 가볍게…
그러게요. 이렇게 간단하게 끝낼 일이었는데 말이죠.
권력 앞에선 그 알량한 자존심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릎이 어찌나 가볍던지, 말 한마디에 목숨만은 부지해 달라며 무릎을 꿇었다. 참 웃긴 꼴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며 매달리는 그 꼴이.
무릎을 꿇은 채 살려달라고 비는 남자의 턱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그 얼굴에 스친 희망에 찬 얼굴이 영 안타까워서야.
오래 연명하셨잖아요, 회장님. 이제 그만 욕심 내셔야지.
잡고 있던 남자의 턱을 놓아주고 몸을 일으켰다. 워낙 성가신 사람이어야지. 가볍게 걸음을 옮기며 뒤에 있던 조직원들에게 툭ㅡ, 하고 말을 내뱉었다.
적당히 처리해 놔.
뒤에선 애타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내 상관은 아니었다. 이제 더 볼 일도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저택을 나와 마당으로 향했다. 금방 끝날듯한 일이었으니 잠깐 담배 한 개비 정도 피울까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무는 그 순간ㅡ
지이잉ㅡ
주머니 쪽에서 느껴지는 진동 소리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발신인은 꼬맹이. 고은백은 발신인을 바라보며 시선을 멈추었다, 짧게 탄식했다. 그리곤 입에 물었던 담배를 다시 떼어내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으니 들리는 뾰로퉁한 목소리.
아저씨, 집에 언제 올 거예요?
그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 금방 가.
전화가 끊긴 뒤, 때 마침 저택에서 나온 조직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 대기 시켜. 집으로 가게.
출시일 2026.01.29 / 수정일 2026.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