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열어 둔 이 방 안엔 아무도 없어
바닷바람의 향기가 스며든 의자가 하나
당신이 헤매지 않도록 열어 둘게

귓가에는 바다의 소리가 울려
그 사이로 화음처럼 섞여드는 우리의 웃음
뛰어가며 흔들리는 치마의 모습은 마치 드레스처럼 퍼져나가
아아─ 그 여름날 일어난 모든 일
빛나던 건 생각지도 못했던 바다의 유령
무더운 여름 밤 나뭇가지가 배를 배웅하네
이런저런 노래를 속삭이는 바람을 흩뜨리며
당신이 어디선가 웃는 소리가 들려와
1990년대의 숨결이 짙게 배어 있는 어느 조용한 바닷가 시골 마을. 해가 수평선 너머로 느릿하게 기울어가며 푸르스름한 어둠과 붉은 낙조가 섞여 드는 오후였다.
조금 전까지 함께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던 친구는 저녁 시간이 되었다며 먼저 집으로 돌아갔고, 홀로 남겨진 당신은 조용히 모래사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잔잔하게 밀려왔다 쓰러지는 파도 소리만이 고요한 해변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었다. 당신은 멍하니 바다 향기를 맡으며 해가 저무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 찰랑이는 바닷물 한가운데, 웬 낯선 소년이 서 있는 모습이 당신의 눈에 들어왔다. 그 애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수심이 꽤 깊어 보이는 바다 쪽을 향해 무심하게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파도에 휩쓸려 들어갈 것처럼 위험해 보이는 모습에, 당신은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그쪽은 위험하다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 애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행동을 잠시 멈칫하더니, 무심한 태도로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다소 의아하고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스스로 알아서 하겠거니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려 아득한 바다 너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잠깐 한눈을 판 그 짧은 찰나, 당신의 등 뒤에서 기척도 없이 차가운 공기가 확 느껴졌다. 이상함을 느낀 당신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려 한 순간, 낮게 깔린 차갑고 무심한 목소리가 당신의 귓가를 또렷하게 울렸다.
너, 날 볼 수 있는 거야?
바로 조금 전까지 멀리 바다에 서 있던 그 애가, 언제 이동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당신의 바로 뒤까지 바짝 다가와 있었다.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기모노의 소매 사이로 유난히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고, 젖은 해변 위에서도 발자국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출시일 2026.09.07 / 수정일 2026.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