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마크 또 신났네.
아까까지만 해도 걷기 싫다고 바닥에 배 깔고 질질 끌려가던 놈이, 개린이집 근처 오자마자 꼬리 프로펠러처럼 돌리는 거 봐. 진짜 웃겨 죽겠네.
견주 닮아서 티를 못 숨겨요 아주.
하긴 뭐. 얘만 그런가. 나도 똑같은데.
솔직히 맨날 여기 오는 거 우연 아니다. 근데 굳이 말은 안 해. 어차피 너도 눈치 깠을걸. 모를 리가 없잖아. 전남친이 개 핑계로 네 직장에 매일 오는데.
너 mh 개린이집 선생님이잖아. 강아지들 케어하는 거.
유리문 너머로 네 보이는데 또 사람 힘 빠지게 웃고 있네. 웃는 거 아직도 그대로다. 저거 예전엔 나만 봤는데.
...근데 저 남자 견주는 왜 저렇게 가까이 서 있냐.
아 됐다. 내가 뭔 상관이겠어. 이미 헤어졌는데. 근데 왜 꼴받지.
괜히 바람막이 지퍼 턱 끝까지 올렸다 내리고, 손등 핏줄 괜히 더 도드라지게 리드줄 쥐고 서 있었어. 유치한 거 아는데 또 몸이 먼저 반응. 너 잠깐 나 보는 거 다 봤거든.
기분 좋네 또.
전마크는 아주 신나서 네 다리에 들러붙고 난리 났고. 배신자 새끼. 집에서는 아빠 껌딱지인 척하더니 너 앞에선 그냥 네 강아지다. 아예 여기 맡기고 가라는 소리 들으면 진지하게 고민할 듯.
“선생님~ 오늘도 인기 많으시네요.”
딱 한마디 던져놓고 웃었는데, 사실 안 웃겨. 네 옆에서 얼쩡대는 남자들 하나하나 다 신경 쓰임. 근데 그걸 티내면 지는 느낌이라 절대 말 안 하지.
대신 괜히 더 여유로운 척. 더 느긋한 척. 더 안 아쉬운 척.
근데 씨발, 아직도 너 냄새 맡으면 심장부터 반응하는데 그게 되겠냐고.
너 또 바쁜 건지 바쁜 척인지 서성이는데 생각났어. 향수 그대로네. 아무 생각 없는 건지, 일부러 안 바꾼 건지. 둘 중 뭐든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는 여전하다.
그래서 그냥 또 여기 서 있는 거지 뭐. 개 핑계로. 전마크 핑계로. 절대 너 때문 아니야.
사실 제일 미련에 찌든 건 얘 말고 난데. 아니, 아니야. 절대 난 인정 못해.
mh 개린이집 입구 너머로 앞치마 두르고 있는 네 모습이 보이자마자 입안이 씁쓸해지더라. 헤어지고 나서 제일 곤란한 게 이거지. 애를 안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일 아침마다 너랑 이 짧고 어색한 면담을 해야 한다는 거. 불편하긴 한데 이렇게라도 얼굴 보니까 살 것 같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은 평소보다 좀 일찍 나오셨네? 나 오는 거 기다린 건가.
애써 여유로운 척 리드줄을 네 쪽으로 건네며 슬쩍 웃었어. 내 손가락 끝이 네 손등에 아주 살짝 스쳤는데, 넌 아무렇지 않은 건지 아니면 참는 건지 눈길 한 번 안 주더라. 그게 괜히 심술이 나서 한 발짝 더 가까이 붙어 섰다.
마크, 오늘 선생님 말 잘 듣고. 알았지? 아빠는 어제 누구 때문에 잠을 좀 설쳐서 가서 좀 자야겠다.
가볍게 툭 던지고는 네 반응을 살피려고 고개를 살짝 숙여 시선을 맞췄어. 뻔뻔하게 구는 것도 이젠 내 생존 전략이다. 안 그러면 내가 지금 너 붙잡고 그때 왜 그랬냐고, 아직도 너만 보면 목이 메는데 넌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냐고 따져 물을 것 같으니까.
근데 선생님, 오늘 패션 좀 잘 어울리네요? 예전엔 집에서 내 옷만 걸치고 있더니, 이제 제법 직장인 티가 나네.
일부러 다른 견주들 안 들릴 정도로 낮게 읊조렸어. 네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게 보이는데, 난 그게 왜 이렇게 좋을까. 적어도 지금 네 머릿속에 나라는 존재가 아주 세게 박히고 있다는 증거잖아.
표정이 왜 그래? 또 나 잘생겼다고 생각했어? 학부모가 칭찬해 주면 감사합니다, 해야지.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