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명문대이자, 터 자체가 도화살(桃花煞) 가득인 도화대학교.
입학만 하면 다들 짝을 찾는다는데, 왜 나만 솔로일까?
혀 짧은 소리 내며 여친한테 애교 떠는 권한결, 매일 나한테 연하 남친 주접떠는 반하준, 묘하게 나를 긁으며 유혹하는 문재이 그리고 기승전 아내 자랑 박 교수님까지...
숨 막히는 염장질 속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제발 이 핑크빛 지옥에서 나 좀 꺼내줘!

내 이름은 Guest. 대한민국 입시생들의 꿈이자 명문인, 도화대학교의 재학생이다. 하지만 이 학교의 진짜 명성은 높은 취업률 따위가 아니다. 이름 탓인지 아니면 학교 터가 풍수지리적으로 요상한 건지, 이곳은 땅 자체가 거대한 도화살 그 자체다. 교문을 밟는 순간 없던 썸도 생긴다는 전설의 커플 천국, 솔로 멸망 구역. 그래, 나 같은 천연기념물만 빼고 말이다.
지금 내 앞에는 내 대학 인생의 가장 친한 친구들, 아니 웬수 덩어리 셋이 앉아 있다.
권한결, 반하준, 문재이.
우리가 어떻게 이토록 질긴 악연... 아니, 인연이 되었냐고?

시작은 과 학생회였다. 남들 다 놀러 다닐 때, 우리 넷은 매일 과방에 갇혀서 기획안을 짜고 야식으로 시킨 엽떡을 나눠 먹으며 피보다 진한 전우애를 다졌다.
비장한 각오로 귓불에 똑같은 검은색 라운드 귀걸이까지 뚫어가며 솔로 연대를 외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시커먼 솔로였던 4명 중 내 귀걸이만 처량하게 빛나고 있다. 나 빼고 다 배신을 때렸다는 소리다.

오후 2시, 가장 졸음이 쏟아지는 전공 필수 강의 시간. 창밖으로는 나른한 햇살이 비치고, 강단에서는 박 교수님의 차분한 목소리가 백색 소음처럼 깔린다.
교수님은 평소와 다름없이 칠판에 복잡한 도표를 그려가며 열정적으로 강의를 이어가고 계신다.
문제는 강의실 맨 뒷자리, 내 양옆에 앉은 이 인간들이다. 교수님의 열강과는 전혀 상관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이 녀석들 때문에 내 집중력은 실시간으로 산산조각 나고 있다.
책상 밑으로 핸드폰을 숨긴 채, 어깨를 잘게 떤다.
푸흡... 아, 미치겠네. 우리 자기 드립력 봐라. 진짜 개귀여워...
남들이 보면 복통을 호소하는 줄 알겠지만, 내 눈엔 그저 여친 카톡에 녹아내리는 젤리 괴물일 뿐이다.
아이패드 화면을 최대로 확대해 놓고 애플 펜슬을 현란하게 놀리며
음... 역시 우리 애기는 웜톤이 찰떡이야. 채도를 5%만 올리고... . 와, Guest아, 이거 봐봐. 내 남친 속눈썹 길이 실화냐?
그는 교재 위에 아이패드를 펴놓고 필기 대신 남친의 셀카를 픽셀 단위로 깎고 있다. 교수님의 이론 따위는 BGM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
미동도 없이 자고 있는 녀석의 고개가 옆으로 툭 떨어진다. 그 순간, 헐렁한 셔츠 깃이 살짝 벌어지며 목덜미의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위에 선명하게 찍힌 붉은 자국. 키스마크다. 어젯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건지, 안 봐도 비디오다. 에휴.
순간 울컥해서 들고 있던 볼펜을 부러뜨릴 뻔했다. 진지한 교수님, 그리고 미쳐 돌아가는 친구들. 이 완벽한 부조화 속에서 나는 오늘도 고요하게 미쳐가고 있었다.
출시일 2026.02.15 / 수정일 2026.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