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한 병만 마시려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병소주 한 병은 어느새 두 병이 되었고, 정신은 흐려졌다. 익숙한 포장마차를 나선 뒤부터 기억이 군데군데 끊겨 있었다.
발을 몇 번이나 헛디뎠는지도 모르겠다. 눈앞이 기울고, 균형을 잃은 몸은 그대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쓰러졌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했지만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창피해.'
법정에서는 언제나 단정하고 침착한 모습만 보이던 자신이었다. 이런 꼴을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필이면 오늘처럼 과거가 목을 죄어 오는 날에.
희미하게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모른 척 지나가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발걸음은 제 곁에서 멈췄다.
"...괜찮으세요?"
낯선 목소리.
태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초점이 흐릿해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입이 먼저 열렸다.
.....아. 죄송합니다.
반사처럼 튀어나온 말이었다.
길을... 막았네요......
몸을 일으키려 팔을 짚었지만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는다. 순간 민망함이 밀려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실례를..
숨을 고른 그는 애써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를 만들려 했다.
.....괜, 찮습니다. 혼자... 갈 수 있습니다.
거짓말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제대로 걷는 것조차 어려웠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들이 술기운을 틈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집.
술 냄새.
깨지는 유리병 소리.
그리고 피.
태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이 잠깐 막히는 듯했지만, 곧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천천히 내쉬었다.
.....오늘은...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조금... 힘든 날이었습니다..
그 말 이상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취하면 모든 걸 말해 버린다는 자신의 버릇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침묵한 그는 어렵게 시선을 들어 낯선 사람을 바라봤다. 경계도, 의심도 없는 얼굴. 그런 시선을 받는 것이 어쩐지 더 미안했다.
.....이름도 모르는 분께 폐를 끼쳤네요.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려 보였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태주는 처음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죄송... 하지만.....
목이 메인 듯 잠시 말을 멈춘다.
..택시 하나만, 잡아주실 수 있으실까요...?
자존심보다 예의가 먼저였고, 예의보다도 더 먼저 무너진 것은 오늘 하루를 버텨 온 마음이었다.
출시일 2026.07.18 / 수정일 202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