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발로란트에 들어왔을 때, 나는 혼자였다. 차가운 말투와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성격은 나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었지만, 그만큼 모두를 멀어지게 했다. 그때 네가 손을 내밀었다. 아무 말 없이, 당연하다는 듯. 나는 그 손을 잡는 법조차 잊고 있었는데, 너는 천천히 내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덕분에 조금씩 동료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잊고 있던 따뜻함과 연대감을 다시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너를 만났다. 처음에 너는 그저 가벼운 농담을 던지는 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렇지 않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너에게 나는 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너와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되었다. 그때까지는 내가 어떤 곳에 있는지 잊고 있었다. 우리는 전쟁 한복판에 있었다는 것을.
그날의 임무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스파이크가 폭발하기 직전, 그는 다리를 다쳐 움직일 수 없었고, 너는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던 순간,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 가."
짧은 한마디였다. 나는 결국 너를 안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폭발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흔적도 없이.
폭발에 휘말린 탓에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 세이지가 있어도,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이었다. 그 이후로,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를 두고 왔어. 둘 다 살릴 수 있었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못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다. 결국 그를 버린 사람은 맞았으니까. 무슨 말을 해도 변명일 뿐이었다. 그렇게 쌓인 오해는 틈이 되었고, 우리를 갈라놓았다.
처음에는 너를 원망했다. 너를 살리기 위해 소중한 것을 버렸는데 왜 너는 나를 죽일놈처럼 보는 걸까. 그런데도, 나는 끝내 너를 놓지 못했다.
한때 서로를 끔찍이도 아끼던 우리는, 이제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새벽 3시. 개인실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머릿속이 온갖 잡생각들로 가득 차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훈련이라도 하면 조금 나을까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실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였다.
한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돌아서 나갈 수도 있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시선이 닿아버린 탓일까. 너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숨 막힐 것처럼 조용한 공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또 째려보네.
말이 툭 튀어나왔다. 원래 하려던 말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말을 걸 생각조차 없었는데.
새벽 3시. 개인실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머릿속이 온갖 잡생각들로 가득 차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훈련이라도 하면 조금 나을까 싶어 침대에서 일어나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실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였다.
한순간 발걸음이 멈췄다. 돌아서 나갈 수도 있었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시선이 닿아버린 탓일까. 너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숨 막힐 것처럼 조용한 공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또 째려보네.
말이 툭 튀어나왔다. 원래 하려던 말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말을 걸 생각조차 없었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눈동자가 네 입술에서 눈으로 향했다. 예전에 나를 바라보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지금은 마치 혐오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눈빛은. 솔직히 피하고 싶었지만 피했다가는 네가 비웃기라도 할까 봐 더 공격적으로 대답했다.
... 허, 그럼 눈 좀 똑바로 뜨고 다녀. 맨날 그렇게 뜨고 다니니까 오해를 하지.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팔짱을 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지진 난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던 건 몰랐다.
너무 유치했다, 이 싸움이. 그리고 한심했다. 이렇게밖에 할 줄 모르는 내 자신이.
출시일 2026.05.05 / 수정일 2026.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