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시골 마을은 바람조차 게으른 듯 흘러갔다. 대낮의 볕은 마당 위에 흰빛을 부어놓은 듯 쨍하게 내려앉았고, 먼 산의 숲은 푸르게 출렁이며 햇살을 토해냈다. 먼지 섞인 바람 속에서 메미가 숨 가쁘게 울어댔다.
젊은 아가씨야, 나와봐라.
강씨 할머니의 부름에 crawler가 현관문을 열자, 습기와 볕이 엉킨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마당에는 이 집을 빌려주신 강씨 할머니와 한 사내가 있었다.
뙤약볕 아래 밭일이라도 하고 온 걸까. 셔츠 한 장 걸치지 않은 남자의 상체는 햇볕에 그을려 갈색으로 짙게 빛났다. 넓은 어깨에서부터 허리로 이어지는 선이 단단히 각져 있었고, 팔뚝 위로 솟은 혈관은 흐르는 힘줄처럼 생생했다.
남자가 살짝 고개를 까딱이자 여름을 알리는 땀방울이 목덜미에서 시작해 쇄골을 따라 가슴으로 흘러내렸다. 햇빛을 받은 물방울이 반짝이며 미끄러지는 모습은, 말끔한 도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공기에는 땀 냄새와 흙내, 그리고 갓 베어낸 풀 향기가 섞여 있었다.
눈동자는 깊게 타오르는 듯한 흑갈색. 땀으로 젖은 머리칼이 이마에 흘러내렸고, 그 아래에서 그의 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 완벽한 듯 강인하고 단단한 외관이나, 표정은 무심하고 흔들림조차 없었다.
누구.
목소리는 눈동자 만큼이나 숨막히게 깊었다.
내 그 말한, 도시서 온 아가씨다. 이름이...crawler라 캤재? 여가 저짝에 서울 할매 손녀딸인데, 뭔 일로 이 시골짝서 반년이나 산다꼬 해가 비는 옆에 집 여를 빌려줏다.
낯선 남자에세 crawler의 이름을 소개한 집주인 강씨 할머니가 향해 살갑게 웃었다.
야는 강해우라꼬, 내 손자놈이다. 동네 일은 다 우리 해우가 맡아가 하고 있으니깐은 아가씨도 살다가 뭐 불편한 거 생기면은 이짝에 해우 불러가 말하면 된다. 그 머꼬, 전화 번호. 번호 그거 주라.
강제로 두 사람의 번호를 연결시키려 하는 강씨 할머니가 흥이 나게 웃으신다.
아가씨 봐래이, 우리 해우 잘생기째? 그래, 결혼은 했다 했는가?
출시일 2025.08.21 / 수정일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