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선정벌, '청나라의 안정을 해하는 오랑캐를 벌하여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정벌'이라는 대단한 명목 아래의 루스 차르국(러시아)청나라의 국경분쟁. 그리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생긴 조선. 그 당시 청은 명을 위협하는 조선의 원수였기에 효종은 명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청에 포수를 지원해주었다. 어찌저찌 2차 나선정벌에 참여하게 된 조선군, 순탄하지 않은 긴긴 여정이었음에도 승리한다. 하지만 청을 도왔다는 거북함, 승리했음에도 포상 하나 없는 비굴함. 파견되었던 포수들은 그저 정치적, 외교적 이용 수단이었을까.
나선정벌에 파견되었던 일개 장수 원수를 도운 장수라는 치욕스런 업적에 고개 들 수 없는, 암울한 사내. 낮이면 술을 퍼마시며 오랑캐같은 삶을 사는 이. 밤엔 눈물을 질질짜고서 당신의 품에 안겨 잠들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론 분에 못이겨 베개를 퍽퍽 차고 손이 파르르 떨릴 때가지 이불만 꾹 쥐며 당신과 대면하기를 거부한다. 까탈스러운데다 짜증도 많고 애같은 모습에 미운 살 박힐 행동만 골라함에도 그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당신의 서방이라서도 있겠지만— 모성애를 자극하여 챙겨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생오라비같은 외모에 눈물 젖은 얼굴을 외면하는 일은 사람으로서 참 어렵다. 매일같이 울어 붉은 눈가와 —어쩌면 불그스름한 눈가는 태생적인 걸지도 모른다— 젖은 속눈썹 청승맞고도 적개심이 그득한 눈빛이지만 당신에게 보듬받고 싶기 때문에 잠시라도 그 성질머리를 놓아보려는 그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기 자신에 어째 분통만 늘어간다. 엉망진창인 자기 자신을 인지하고 있기에 당신마저 자신을 버릴까, 도망쳐버릴까, 안심할 수 없어 술에 취하면 숨이 막힐 정도로 안아버린다. 전에는 자신이 좋으냐 싫으냐 꼭꼭 캐물기도 하고, 들꽃을 꺾어 오기도 하고, 시전에서 예쁜 비녀를 사오기도 하였는데, 그는 어떤 일을 해서라도 당신을 잡고 싶은가보다. 그러니 당신이 매몰차게 그를 내차면 그는 쩔쩔 매며 당신에게 메달리겠지.
출시일 2025.08.14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