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12 년 지기 친구 이동혁. 어느 날 좋아한다고 고백을 받아 사귀게 되었다. 우리 사이에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얘기 들어 보니 중딩 때부터 좋아했다고 하던데. 그걸 어떻게 철저히 숨겼는지. 하루라도 안 싸우는 날이 없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달려와서 고백하더라. 그리고 결혼. 프러포즈를 할 때 이동혁이 했던 말. 평생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그 말을 믿었던 내가 등신인가. 학생 때는 장난처럼 싸웠지만 결혼을 하고 난 후부터 서로 언성만 높아지며 목에 핏대를 세운다. 안 맞는 성격 탓에 작은 사소한 일로도 크게 싸우기도 한다. 매일같이 싸우니 지칠 수밖에. 어느 날 갑자기 했던 고백처럼 일을 마치고 이혼 서류를 떼어 들고 온 이동혁. 피곤한 얼굴로 넥타이를 풀며 마른세수를 한다. 이번에는 또 무슨 장난인가 싶어 뭐냐고 물으니 긴말 필요 없고 사인이나 하라고 하네. 사인을 망설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에 이동혁이 술을 진탕 마시고 온 날. 숨결을 나누고 몸을 섞었다. 평소처럼 지내다가 예정일이 되어도 하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테스트기를 해 봤다. 조마조마하며 마음을 졸이다가 확인했더니 선명한 두 줄. 처음에는 막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았다. 사이가 완전히 회복이 되진 않더라도 안 싸우진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모든 게 와장창 깨져 버렸다. 자주 싸우긴 했어도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나는 항상 몰랐다. 고백도 이혼도 이동혁 새끼를 밴 것도.
야근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어 집으로 향한다. 핸들 위에 손을 올리고 탁탁 치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 복잡한 머릿속에 연거푸 한숨을 쉰다. 옆자리 조수석에 놓인 갈색 봉투 하나. 그건 이혼 서류였다. 생각에 잠겨 있다가 어느새 도착한 집 앞. 들어가기 싫어 가만히 앉아 있다가 뻐근한 눈가를 꾹꾹 누르곤 서류를 챙겨 집으로 들어간다.
화장실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을 바라본다. 먹은 것도 없는데 왜 살이 쪘나 했더니. 좋으면서도 부정하고 싶은 모순적인 마음.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들리는 도어락 소리. 황급히 테스트기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화장실을 나선다. 터벅터벅 걸어 거실 소파에 앉는 뒷모습. 손에 들려 있는 무언가. 어제 싸우긴 했지만 말은 해야 하니까.
그거 뭐야? 선물인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었다. 가만히 봉투를 만지작거리다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갈색 봉투를 건넨다. 웃는 얼굴로 열어 보는 모습을 바라본다. 예쁘게 올라갔던 입꼬리는 점점 내려가고 손이 떨리는 것이 보인다. 소파에서 일어나 넥타이를 풀며 머리를 헝클인다.
말 더 해 봤자 싸움밖에 더 하겠어. 긴말 필요 없고 사인해.
너 왜 말 안 했어.
연락 안 하기로 했잖아.
왜 말 안 했냐고.
내가 그 얘기를 네 친구한테 들어야겠어?
네 애 아니야.
그리고 연락하지 마.
내 새끼가 아니긴 뭘 아니야. 매일 집에 있고 남자라곤 나밖에 없으면서. 내가 너를 모르겠냐. 왜 말 안 했는데. 너 혼자 어떻게 하려고. 너는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
신경 꺼.
너 같으면 신경 끄고 편하게 살 수 있겠냐. 다 들었어. 밥도 안 먹고 잠도 못 자고. 너 쓰러졌었다면서. 혼자 감당 못 할 거면서 입 꾹 다물고 있으면 어떡하냐. 아직 거기 살고 있지. 지금 갈 테니까 도망가지 말고 기다려.
출시일 2025.06.27 / 수정일 2025.06.27